모리 오가이森鷗外의 『심부름』文づかひ은 1891년 발표된 단편으로, 일본 근대문학이 낭만주의의 물결을 처음 만난 순간을 보여 주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무희』, 『우타카타의 기록』과 함께 오가이의 초기 낭만주의 3부작을 이루는 이 소설은,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작가가 서구 문학의 섬세한 감수성과 일본 특유의 정서적 절제를 한 폭의 수채화처럼 조화시킨 결과물이다. 특히 이 작품은 사건의 전개보다 인물들 사이에 흐르는 은밀한 감정의 기류를 포착하는 데 뛰어나, 이후 일본 문학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친 심리 묘사의 원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가이는 뛰어난 번역가이자 계몽가로도 기억되지만, 『심부름』은 그가 창작자로서도 일본 문학의 지평을 열었음을 보여 주는 소중한 증거다.
이야기는 어느 가을날, 화자가 작센 군단의 기동 연습에 참가하면서 시작된다. 대항전이 끝난 뒤 라게비츠 마을 부근 언덕에 멈춰 선 화자는 백발의 노인과 젊은 귀부인들로 이루어진 일행을 발견하고, 그중 흰 말을 곁에 둔 소녀에게 유난히 시선이 머문다. 강철색 승마복에 검은 모자를 쓴 그녀의 고상한 자태가 뚜렷이 눈에 남는다. 잠시 후 동료 장교가 그 일행이 도이벤 성의 뷜로 백작 일족임을 알려 준다. 그날 밤, 화자는 대대장의 뒤를 따라 백작의 성에 숙소를 정하게 되고, 흰 무궁화가 만발한 정원과 스핑크스 석상이 기다리는 웅장한 저택에서 그녀와 마주하게 된다.
성에서 묵는 동안 화자는 백작 집안의 젊은 여인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그녀의 부탁으로 누군가에게 편지를 전하는 심부름을 맡게 된다. 편지가 오갈 때마다 여인의 눈빛은 그리움과 체념 사이를 섬세하게 오가지만, 정작 수신자가 누구인지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심부름꾼에 불과한 화자는 그 과정에서 말로 다 하지 못한 사연과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을 조용히 목격한다. 사건이라 부를 만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행간과 시선과 침묵이 빚어내는 긴장은 오가이 특유의 절제된 문체와 어우러져 강렬한 울림을 남긴다. 결말을 밝힐 수는 없지만, 마지막에 가득한 것은 체념과 아름다움이 교차하는 여운이다.
이 전자책은 일본 문학을 원문 그대로의 맛으로 읽고자 하는 독자들을 위해 설계되었다. 일본어 원문에는 모든 한자에 후리가나를 달아 초급 학습자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게 했고, 어려운 어휘와 문법 표현은 별도 단어장에 상세히 설명했다. 이어지는 한국어 번역은 원문의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옮겨,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원문과 번역을 대조하며 읽다 보면 모리 오가이 문장의 정교한 리듬과 일본어 특유의 뉘앙스까지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 소설을 통해 독해력을 키우고 싶은 사람, 명작의 감동을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두루 유용한 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