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지 않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 잊힌다. 정규 교육 한국사에 깊이 다루지 않는 우리나라 곳곳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우리는 과연 잘 알고 있을까? 《대한민국 도슨트 시리즈》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지역사와 향토 문화를 기록하는 새로운 인문지리지를 지향한다. 이 시리즈는 지역에서 실제 거주하거나 지역과 깊은 연고가 있는 분을 도슨트로 삼아 해당 지역을 친절히 안내한다. 깊이 있는 국내 여행을 추구하는 분은 물론 지역 현지인의 삶을 생생히 느끼고 싶은 분에게 《대한민국 도슨트 시리즈》를 권한다. 그 스무 번째 여정으로 떠날 지역은 『정읍』이다.
머물러 살기에 더없이 좋은 도시, 정읍
서울에서 KTX로 두 시간이 채 안 걸리는 도시. 봄날엔 노란 유채꽃이 여름철엔 푸른 벼가 물결치고, 가을이면 은빛 억새와 황금 들판이 푸른 하늘과 맞닿아 지평선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곳. 해마다 단풍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내장산이 있는 정읍은 한두 번 여행으로는 온전히 알 수 없는 깊이와 문화가 깃든 곳이다.
오늘날 정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어 가는 향토 문화와 정신은 물론 백제를 거쳐 조선시대 작은 한양으로 불리다 한국 근현대사와 뗄 수 없는 역사를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해설사인 작가가 상세히 전해준다. 작가는 정읍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일군 오늘날 정읍의 풍경을 차근차근 알려주며, 다른 지역에선 볼 수 없는 ‘정읍지황 사용점’ 인증표가 있는 쌍화차 거리부터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기차 태워 배달했다는 송명섭 명인이 만든 막걸리와 죽력고 그리고 천년 명가 맛집까지 소개하여 정읍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한다.
생명애 도시 정읍, 바이오필리아 시티를 향하다
정읍에 서면 지평선이 보인다. 눈 닿는 데까지 이어지는 호남평야의 논이 바람에 일렁이는 풍경은, 그대로 ‘생명의 쌀바다’다. 이 평야는 오늘의 자랑만이 아니다. 천년도 더 전 태산지금의 태인과 고부의 광활한 쌀 생산지는 통일신라가 탐낸 세금의 곳간이자 당나라와 이어지는 서해 교역의 관문이었다. 신라 최고의 천재 문장가 고운 최치원이 굳이 이 변방으로 태수를 자청해 온 까닭도 바로 이 쌀에 있었다.
가을이면 단풍의 명산 내장산이 온 산을 붉게 물들이고, 옥정호 물안개 위로 하얀 구절초가 피어난다. 봄이면 무성서원 천년 숲에서 연둣빛 새순이 움트고 새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생명이 자라고 익고 다시 피어나는 순환-정읍의 사계절은 그 자체로 살아 숨 쉰다.
정읍의 진짜 이야기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지역 사회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변화를 이끄는 시민들이 많다. 2016년부터 시민 활동가들은 ‘내장산 상설 소싸움 도박장 건립 반대와 동물 학대 소싸움대회 폐지’를 위해 노력했다. 시청 앞 아침 1인 시위는 한 해를 지나 이어졌고, 그 결과 정읍은 전국 13개 소싸움대회 개최지역에서 소싸움을 가장 먼저 폐지한 지자체가 되었다. 생태 호수 내장호 지키기, 상두산 석산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와 주민 피해 방지, 지역으로 몰려오는 산업폐기물로 인한 환경 오염방지, 안전한 식수원 보호를 위한 조례 만들기 등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다양한 시민 활동은 정읍을 변화의 최전선에선 생명 사랑 도시 바이오필리아로 만들고 있다. 접시꽃 피는 무성리 골목에서 서원을 돌보는 마을 어른, 옛 관아 터에서 선비 문화를 이어 가는 이들, 만석보 들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