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망했어야 했다.” 이 책은 불편하고 도발적인 문장에서 출발한다. 조선은 정말 좋은 나라였을까? 양반 중심의 신분제와 특권정치는 백성에게 어떤 삶을 강요했는가? 조선의 정치와 경제는 왜 근대세계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는가? 그리고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과연 스스로 근대화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흔히 일제강점기를 이야기할 때 두 개의 극단적인 시선 사이에 서게 된다. 하나는 조선을 지나치게 이상화하면서 일본의 식민지배가 조선사회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고 보는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이 철도를 건설하고 공장을 세우고 학교를 만들었으니 결과적으로 조선의 근대화를 도와준 것 아니냐고 묻는 시선이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조선에는 분명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신분제와 정치적 특권, 취약한 재정과 행정, 개혁의 지연, 국제정세에 대한 대응 실패가 겹치면서 국가의 경쟁력은 약화되었다. 개화와 개혁을 추진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충분히 빠르고 강력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대한제국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근대국가로 전환하려 했지만 결국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일본의 식민지배는 조선의 문제를 해결해준 것인가? 식민지시기 조선에는 실제로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철도와 항만이 건설되었고 도시가 성장했으며 공장과 광산이 확대되었다. 학교와 병원, 금융과 행정제도도 변화했다. 조선인은 새로운 산업사회와 근대적 교육, 도시문화와 시장경제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추면 안 된다. 그 철도와 공장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는가.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쳤으며, 산업의 성장으로 누가 가장 큰 이익을 얻었는가. 조선인의 경제적 성장은 일본 제국의 경제적 필요와 어떤 관계에 있었는가. 그리고 경제가 성장했다면 그것만으로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는가.
이 책은 바로 이 질문들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식민지배가 조선사회를 근대화했다”는 주장의 일부는 어디까지 사실인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식민지배가 조선의 근대화를 가져왔다고 해서,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책은 조선을 미화하지 않는다. 조선의 정치적 실패와 사회적 모순, 개혁의 한계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동시에 일본의 식민지배를 단순히 ‘근대화의 선물’로 해석하는 것도 거부한다.
철도는 근대화의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철도가 있다고 해서 식민지배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학교는 새로운 지식을 확산시킬 수 있다. 그러나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지배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공장은 산업화를 촉진할 수 있다. 그러나 공장이 세워졌다는 사실만으로 식민지배가 조선인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역사의 모순과 역설이다. 조선은 근대화에 실패했다.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식민지배 속에서 조선사회는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그 가운데 일부를 물려받아 새로운 국가를 건설했다. 이 모든 사실은 동시에 참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조선은 좋았다”거나 “일본은 나빴다”는 단순한 결론으로 끝나지 않는다. 반대로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시켰으니 식민지배는 다행이었다”는 결론에도 도달하지
목차
서론 : 우리는 왜 ‘조선의 멸망’을 슬퍼하는가
제1부 조선은 정말 살 만한 나라였는가
제1장 조선이라는 나라를 미화하지 말자 제2장 양반은 무엇을 위해 나라를 지켰는가 제3장 백성은 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는가 제4장 신분제는 어떻게 인간의 삶을 결정했는가 제5장 과거제는 인재를 길러냈는가, 지배층을 재생산했는가 제6장 조선의 정치는 왜 개혁에 실패했는가
제2부 조선은 왜 근대화하지 못했는가
제7장 서양은 산업혁명을 시작했는데 조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제8장 일본은 어떻게 먼저 근대국가가 되었는가 제9장 조선의 개화는 왜 늦었는가 제10장 개혁을 시도한 사람들은 왜 실패했는가 제11장 조선 왕조는 스스로 개혁할 수 있었는가 제12장 대한제국은 마지막 기회였는가
제3부 망국은 피할 수 있었는가
제13장 청나라와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서 조선은 무엇을 선택할 수 있었는가 제14장 동학농민전쟁은 조선을 바꿀 수 있었는가 제15장 갑오개혁은 왜 좌절했는가 제16장 고종은 근대화를 추진한 군주였는가 제17장 대한제국은 근대국가였는가 제18장 1910년 조선은 이미 얼마나 무너져 있었는가
제4부 일본은 조선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제19장 식민지배는 무엇부터 바꾸었는가 제20장 철도는 수탈의 도구였는가, 근대화의 기반이었는가 제21장 일본은 왜 학교를 만들었는가 제22장 토지조사는 무엇을 가져왔는가 제23장 화폐와 금융은 어떻게 바뀌었는가 제24장 도시와 위생과 의료는 어떻게 달라졌는가
제5부 식민지 근대화라는 불편한 진실
제25장 공장은 누구를 위해 세워졌는가 제26장 산업화는 조선인을 근대적 노동자로 만들었는가 제27장 교육의 확대는 조선인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제28장 한글과 근대적 지식인은 어떻게 성장했는가 제29장 식민지 경제는 발전했는가, 수탈당했는가 제30장 식민지 근대화론은 어디까지 맞는가
제6부 그렇다면 식민지배는 ‘좋은 것’이었는가
제31장 경제성장이 자유를 대신할 수 있는가 제32장 철도가 있다고 식민지배가 정당화되는가 제33장 교육을 받았다고 지배가 사라지는가 제34장 조선인은 왜 독립을 원했는가 제35장 3·1운동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제36장 식민지배의 폭력은 근대화와 함께 사라졌는가
제7부 일본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탄생했을까
제37장 해방은 조선 왕조의 부활이 아니었다 제38장 대한민국은 무엇을 물려받았는가 제39장 산업화의 뿌리는 어디에 있었는가 제40장 식민지 경험은 한국인의 근대적 정체성을 어떻게 만들었는가 제41장 일본의 유산을 버렸는가, 이용했는가 제42장 대한민국은 조선의 연장인가, 식민지의 산물인가
제8부 우리가 정말 묻고 싶은 질문
제43장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제44장 조선이 독립을 유지했다면 근대화할 수 있었을까 제45장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면 더 나았을까 제46장 중국의 영향권에 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제47장 식민지가 되지 않고 산업국가가 될 가능성은 있었는가 제48장 역사에는 ‘다행인 식민지배’가 존재할 수 있는가
결론 : 조선이 망한 것은 다행이었는가 참고문헌
작가 소개
작가김준혁
버지니아 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계사 전공으로 논문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세종대왕의 두 얼굴』, 『제국의 법칙』, 『불타는 공화국』,『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의 법칙』, 『십자군 전쟁은 종교 전쟁이었나』,『총, 바다, 자본』,『 멈추지 않는 미국 국경 팽창 500년』,『세계의 인종차별』,『 스파르타는 어떻게 전설이 되었는가』『친일파는 누구인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