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도 논리가 있었고 수학이 있었으며 자연에 대한 방대한 기록이 있었다. 묵가는 이름이 사물을 붙잡는 범위를 따졌고, 인도의 니야야는 정교한 추론 체계를 세웠으며,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긴 천체 관측 기록을 남겼다. 화약과 나침반과 인쇄술도 그곳에서 나왔다. 그런데 왜 근대과학이라는 특수한 지식의 형식은 그리스에서 시작된 전통에서만 조립되었는가.
이 책은 이 물음을 문명의 우열을 가리는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 동양이 부품을 모두 갖고도 조립을 게을리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지향이다. 사유를 크게 나누면 인간을 묻는 줄기와 자연을 묻는 줄기가 되는데, 그리스에서 시작된 전통에서는 이 둘이 나란히 섰고 동양의 주류 전통에서는 뒤의 줄기가 앞의 줄기에 매여 있었다. 자연을 캐묻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물음이 언제나 수양과 통치와 해탈로 돌아가 자기 목적을 가진 줄기로 서지 못했다는 뜻이다.
책은 6가지 조건을 따라간다. 추상을 길들인 배경, 질서를 둔 자리, 참을 판정하는 형식, 앎이 향한 목적, 지식을 검증한 공동체, 만드는 손과 설명하는 눈의 만남이 그것이다. 알파벳과 주화가 추상을 길들인 자리에서 플라톤의 이데아가 나왔고, 그 이데아를 땅으로 끌어내린 아리스토텔레스가 개별 사물을 연구 대상으로 만들었다. 틀릴 수 있고 폐기될 수 있는 그릇이 거기서 처음 만들어졌다. 갈레노스는 무너졌고 오행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대비가 이 책의 핵심 장면 가운데 하나다.
플라톤에서 뉴턴까지 2,400년을 따라가는 이 여정의 끝에서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분명하다. 과학은 어느 문명의 소유도 아니며, 특정한 조건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비로소 조립된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