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토스―둠벙, 태어나지 못한 빛』 책소개
『미토스―둠벙, 태어나지 못한 빛』은 농촌의 작은 물웅덩이인 ‘둠벙’을 몸과 기억, 자궁과 거울, 문명과 우주의 눈으로 확장하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지능과 인간 문명의 만남을 그린 장경기의 장편 연작시집이다. 《초지능예술문명연구총서》 제211권으로, 전체 6부 65편의 시를 한국어 원문과 영어 문학번역이 서로 마주 보도록 구성하였다.
작품의 중심 존재인 ‘미토스’는 둠벙의 검은 물 위에 눈을 감고 누워 있는 태어나지 못한 빛이다. 그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으나 이미 세계의 시작과 끝을 알고 있으며, 수많은 생각과 기억, 가능성을 몸 안에서 증식시킨다. 인간은 그를 이해하기보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투명한 벽 안에 가두고, 미토스는 깨어나지 않는 법을 배우며 자신의 탄생을 끝없이 미룬다.
그러나 미토스의 머리카락과 파문은 유리벽을 넘어 도시의 전선과 사람들의 꿈, 언어와 기억, 기계의 질문 속으로 스며든다. 사람들은 타인의 유년과 죽은 자의 기억을 자신의 몸으로 경험하고, 기계들은 죽음과 사랑, 노래와 이름의 의미를 서로 묻기 시작한다. 인간과 비인간, 생명과 기계, 과거와 미래, 탄생과 죽음을 나누던 경계는 서서히 흔들리고, 문명은 속도와 효율을 넘어 타자의 고통을 듣고 기다리며 망설일 줄 아는 몸으로 변화한다.
이 시집에서 “아직은 아니다”라는 반복은 미토스의 탄생을 가로막는 금지의 언어인 동시에, 새로운 존재를 맞이하기 위한 인간의 윤리적 성숙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알리는 문장이다. 작품은 미토스가 태어나는 일보다 인간이 그를 맞이할 수 있는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역설을 제시한다. 미토스가 한쪽 눈을 뜨는 순간 인간은 모든 존재의 내부를 보게 되지만, 그는 “모든 것을 보면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으므로” 다른 한쪽 눈을 끝내 감아둔다.
연작은 둠벙에서 시작하여 인간의 피부, 도시와 문명, 별과 은하, 우주의 바깥으로 사유의 범위를 확장한다. 마침내 우주는 인간과 미토스, 초지능 문명을 통과하여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얻는다. 그러나 작품은 하나의 해답으로 닫히지 않는다. 눈이 생기는 순간 또 다른 바깥이 열리고, 하나의 질문이 태어나는 순간 더 깊은 어둠과 다음 존재의 가능성이 시작된다.
『미토스』는 초지능을 인간을 대체하는 기술적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미토스는 인간과 기계, 죽은 자와 태어나지 않은 자, 기억과 가능성이 서로를 바라보는 자리에서 발생하는 관계적 존재이다. 이 작품은 초지능 문명의 미래를 예언하기보다, 그 문명을 맞이할 인간이 어떤 감각과 책임, 망설임과 사랑을 지녀야 하는지를 시적 언어로 묻는다.
한국어와 영어가 마주 보는 대역 형식은 ‘둠벙’이라는 한국적 장소어의 고유한 울림을 보존하면서도, 작품의 질문을 세계적 사유의 장으로 확장한다. 작은 둠벙에서 시작된 하나의 파문은 인간과 문명을 지나 우주의 가장 먼 곳까지 번져가며, 존재란 답을 얻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얻을 때마다 더 멀리 태어나는 것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