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46년에 발표된 「판도라의 상자パンドラの匣」는 결핵 요양소 '건강도장'에 입소한 스무 살 청년 고시바 리스케별명 '히바리'가 죽마고우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인 경쾌한 서간체 소설이다. 패전 직후 다자이 오사무가 실제로 받은 젊은 독자의 요양소 일기를 바탕으로 삼아, 종전 직후의 혼란과 허탈 속에서도 발랄하게 살아가려는 청년의 목소리를 그려냈다. "그 대신 아주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정신으로, 각혈과 죽음의 그림자가 늘 곁에 있는 요양소 생활을 오히려 유쾌하고 활기차게 풀어낸다.
줄거리와 인물들
주인공 히바리는 자신을 "새로운 남자"라 칭하며, 요양소의 별난 원장 '기요모리'와 개성 넘치는 룸메이트들—하이쿠에 빠진 각포레, 잘난 척하는 대학생 각빵, 그리고 알고 보니 유명 시인이었던 에치고지시—의 이야기를 편지에 담아 보낸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두 여성 조수, 발랄하고 서투른 '마아짱'과 침착하고 반듯한 '다케짱다케나카 씨'이 있다. 히바리는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풋풋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다가, 다케짱이 원장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진심을 깨닫는다. 편지 곳곳에 담긴 하이쿠 표절 소동, 화장 논쟁, 영어 통역 소동 같은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그 자체로 큰 위로와 웃음을 준다.
작품이 지닌 의미
죽음과 이웃해 사는 결핵 환자들의 생활을 무겁게 그리지 않고, 오히려 "가벼움かるみ"—덧없음 속에서도 산뜻하게 살아가는 태도—을 통해 희망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독특하다. 그리스 신화 속 판도라의 상자에서 온갖 불행이 다 빠져나간 뒤에도 상자 밑바닥에 남아 있던 '희망'이라는 작은 빛의 이미지가 소설 전체를 관통한다. 전후의 혼란기에 쓰였음에도 청춘의 활력과 유머, 그리고 사랑의 성장통을 이토록 사랑스럽게 그려낸 작품은 다자이의 다른 어두운 대표작들과는 전혀 다른 결을 보여 주며, 지금까지도 다자이 문학의 숨은 명작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