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번 싸워 스물세 번 이긴 장수가, 왜 산가지를 손에 쥐었는가
1597년 봄, 삼도 수군 통제사의 자리에서 쫓겨나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조용히 산가지를 골랐다. 그가 물은 것은 자신을 대신해 수군을 이끌게 된 라이벌 원균의 앞날이었다. 스물세 번 싸워 스물세 번 이긴 불패의 장수가, 앞날을 알 수 없는 어둠 앞에서 점을 친 것이다. 그가 뽑은 괘는 수뢰둔, 그것이 변하여 천풍구가 되었다.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이 된 난중일기에는 이 점괘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성웅도 점을 쳤다는 이 낯선 사실에서, 이 책은 시작한다.
이 하나의 점괘는 단순한 도입부가 아니다. 책의 처음과 끝을 잇는 실이 되어, 마지막 장에서 그 뜻이 온전히 밝혀질 때 독자는 무릎을 치게 된다. 원균의 운명을 가리킨 그 알쏭달쏭한 구절, 곧 박달나무로 오이를 싼다는 말은 대체 무엇을 뜻했는가. 그리고 왜 이순신은 원균의 앞날은 점치면서도 정작 자신의 전쟁, 자신의 승패는 점치지 않았는가. 이 물음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곧 주역이라는 아득한 세계를 관통하는 길이 된다.
오천 자밖에 안 되는데, 누구도 끝까지 읽지 못하는 책
주역은 참으로 기이한 책이다.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 속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안다고 대답하던 사람도 조금만 더 물으면 이내 모른다고 물러선다. 아는데 모르는 책, 그것이 주역의 첫인상이다. 분량으로 보면 오천 자 남짓, 동양 고전 가운데 가장 얇은 축에 든다. 마음먹으면 두 시간이면 넘길 수 있다. 그런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낸 사람을 만나기란 가뭄에 콩 나듯 하다. 집집마다 한 권씩 꽂혀 있으나 아무도 완독하지 못한 책, 그 역설의 정체는 무엇인가.
저자는 주역이 어려운 네 가지 이유를 정면으로 짚는다. 첫째, 그 안에 중국 고대사가 숨어 있다. 둘째, 삼천 년 전 청동기 시대의 낯선 풍속이 배어 있다. 셋째, 주어와 목적어가 밥 먹듯 생략된다. 넷째, 온통 은유와 상징으로 되어 있다. 이 네 겹의 벽을 넘지 못하면 글자는 읽어도 뜻은 끝내 막힌다. 앞서 이순신의 점괘에 나온 박달나무와 오이의 비유가 그러하다. 글자는 다 아는 글자인데, 그 뒤에 숨은 은나라 주왕과 달기의 역사를 모르면 한 줄도 풀리지 않는다. 이 책은 바로 그 벽을 하나씩 허물어, 재미없기로 소문난 이 고전을 손에 잡히도록 풀어낸다.
점치는 법에서 탄생의 역사까지, 두 시간의 완벽한 안내
저자는 먼저 산가지 오십 개로 점치는 법을 직접 시연한다. 하나를 빼어 태극을 상징하고, 남은 마흔아홉을 둘로 갈라 하늘과 땅을 삼고, 넷씩 세어 사계절을 돌린다. 초등학생도 십 분이면 배운다는 이 셈법을, 독자가 그대로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친절하게 보여 준다. 이어 예순네 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본괘와 지괘가 무엇인지, 변효는 어떻게 미래의 괘를 만들어 내는지를 차근차근 짚는다.
그다음 이 책은 주역이라는 책 자체의 탄생사로 나아간다. 거북 등딱지를 불로 지져 점치던 은나라의 갑골문에서 출발해, 폭군에게 갇힌 문왕이 유리의 감옥에서 칠 년을 보내며 예순네 괘를 지어낸 사연, 어린 조카를 지킨 주공이 삼백여든네 개의 효사를 채운 이야기, 그리고 공자가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지도록 읽으며 십익이라는 철학의 날개를 달아 준 과정까지. 복희에서 문왕으로, 주공에서 공자로 이어지는 이 대를 잇는 합작의 드라마가, 주역이 어떻게 점서이자 철학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