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의 인생을 숫자로 셀 수 있을까. 몇 살에 태어났고, 몇 년을 공부하고 일했는지는 셀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엄마가 가슴팍에 달아주던 하얀 손수건의 온기와 아버지의 무뚝뚝한 한마디 속에 담긴 사랑은 숫자로 셀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셀 수 없는 것들》이라고 붙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제 삶에도 많은 숫자가 있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속에서 시작한 직장생활과 앞만 바라보며 달렸던 시간. 그리고 2016년 1월 16일 0시 5분, 뇌출혈로 오른쪽 몸에 마비가 오면서 제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익숙했던 제가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의 배려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잃어버린 것들만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직 내게 남아 있는 것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엇보다 나를 바라보는 한 사람의 시선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좀 어쩔 건데.” 그 사람은 내가 잃어버린 것을 세기보다 아직 남아 있는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장애보다 삶을, 아픔보다 사랑을 먼저 보았습니다.
장애를 경험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습니다. 장애인은 하나의 이름으로 묶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마다 삶이 다르고 필요한 도움도 다릅니다. 그래서 장애인의 삶을 먼저 바라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주었으면 합니다. “우리 없이 우리에 대해 말하지 말라.”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말입니다.
저는 오늘도 왼손으로 글을 씁니다. 한때는 잃어버린 것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왼손이 새로운 이야기를 써주고 있다고 믿습니다. 삶은 때때로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우리는 그곳에서도 다음 문장을 써 내려갈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당신의 삶에도 숫자로는 셀 수 없지만 마음속에 오래 남을 것들이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셀 수 없는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