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38년간의 교직생활을 마무리하는 현직 지리 교사가 쓴 학교 이야기다. 평범한 하루의 반복으로 이룬 정년 앞 오늘의 교실 같지만 사연 없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조퇴를 위해 태국행을 불사하겠다는 아이, 무선이어폰과의 단절에서 불안증을 느끼는 아이, 강아지가 아파서 도저히 학교에 올 수가 없다는 아이. 수업 시간인데도 느닷없이 일어나 자리를 이동하는 아이는 어떠한가. ‘수업 중인데 뭐 하는 거냐’고 물으면 ‘쓰레기를 버리러 간다’는 친절한 답변은 주로 당황스럽지만 변화한 세상에서 예전 같지 않은 아이들에게 교사도 예전과는 다른 어법을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된다.
“궁금해서 묻는 거니까 솔직히 답해 줘. 나는 수업이 시작되면 칠판 앞은 선생님의 무대라고 생각한다. 내 등 뒤로 지나가는 것은 연극이 시작됐는데 무대 위에 있는 배우 뒤로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 네 생각은 어떻니? 다시 말하는데 너를 질책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거다.”
아이의 대답이 더 나를 당황하게 한다.
“지나갈 데가 없어서요.”
중략
“수업 중에 여기는 선생님의 공간이니 수업 중에는 내 뒤로 지나가지 말거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수긍을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깨달음이 왔다. 아하! 이런 것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을 수도 있겠구나! 웃어른을 지나칠 때는 앞으로 지나가는 것보다 뒤로 지나가는 것이 우리의 전통 예법이다. 그러니까 선생님 뒤로 지나가는 것을 예의 바른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_「꼰대짓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중에서
어떻게 공감하고 무엇을 가르칠까?
이 책은 학교 이야기이면서 또한 교사의 이야기다. 엄청 바쁜데도 보람을 느끼기 힘든 환경, 존재감이 없어야 하는 역할,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어루만지는 일을 학년의 중요한 사업 중 하나로 꼽는 학년부장님들 등등. 오랜 시간 교단을 지켜온 교사가 쓴 기록은 학교 안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보여 준다.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했어요.”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아이들을 종종 만난다. 그런 아이에게 묻는다.
“부모님은 네가 무엇을 하길 원하시니?”
대답은 백발백중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래요’다. 모든 선택권을 자식에게 주는 개방적인 부모님이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하고 싶은 것이 없는데,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는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애써 말해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즈음 ‘부모’와 ‘강요’는 아주 비슷한 말이었다. 그때 그 정서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세대가 지금의 부모 세대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강요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부모라면 적어도 길 안내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다’와 ‘내맡기다’를 구별해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것은 청소년기의 특징이고,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_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래요」 중에서
일제와 독재의 권위주의가 남아 있던 1980년대에 비하면 교사의 권위는 오히려 높아졌지만 그것을 체감하는 교사는 많지 않은 현실이다.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고 하루를 버텨내는 교사들로 이루어진 학교 교육은 실효성이 의심받은 지 오래다. 모두가 잘하는 것을 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 아이들을 그런 사회로 내보내기 위해 학교도 학교가 잘하는 것을 했으면 한다.
자연스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