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 개울가에서 젖은 바지를 말리던 한 아이의 기억은 긴 세월을 건너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
『젖은 바지를 말리던 오후』는 장익봉 작가의 소설가 등단작이자 자전적 삶을 바탕으로 한 첫 소설집이다. 어린 시절 개울에서 피라미를 좇던 도진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할아버지에게 배운 『천자문』, 공고 토목과와 대학 토목공학도의 시절, 건설 현장과 공직생활을 거쳐 퇴직 후 문학과 전자책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성장하고 문장이 되어가는지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제1부 「젖은 바지를 말리던 오후」에서는 공부보다 개울과 피라미를 좋아했던 소년이 할아버지의 가르침과 배움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도면과 공사 현장에서 책임을 배우고, 초임 공무원이 된 뒤에는 책상보다 현장을 가까이하며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 과정에서 도진은 행정이란 결국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마음과 마음을 잇는 일임을 깨닫는다. 작품 속 “현장은 행정의 교과서다. 사람을 만날 때, 정책도 태어난다”는 문장은 이 소설이 품고 있는 삶의 철학을 잘 보여준다.
제2부 「종이 너머의 존재」는 공직 이후의 삶과 문학적 성찰로 시선을 넓힌다. 스승과 가족에 대한 기억, 고향을 위해 세계 여러 도시를 돌아보며 얻은 경험, 퇴직 이후 시작한 글쓰기와 전자책 출간까지 이어지면서 삶의 후반부가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늦게 핀 백일홍처럼 새로운 길에 들어선 도진은 “시작은 빠를 필요 없습니다. 다만, 나만의 온기로 피어나면 됩니다”라는 마음으로 다시 자신의 삶을 써 내려간다.
이 작품은 개인의 추억에만 머물지 않는다. 교육과 성장, 공직과 행정, 지역공동체, 고향과 관광, 퇴직 이후의 삶, 기록과 문학을 한 사람의 생애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우리 사회의 모습을 함께 비춘다.
특히 소설부문 신인상 심사에서는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의 내면과 삶의 현장을 진솔하게 그려내면서도, 한 개인의 이야기를 사회와 공동체의 문제로 확장한 점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오랜 삶의 경험에서 길어 올린 사실적인 서술과 따뜻한 시선이 작품의 진정성을 높였다는 평과 함께 소설가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어린 날의 젖은 바지는 오래전에 말랐지만 그날의 물비린내와 햇살, 할아버지의 목소리와 삶에서 만난 사람들의 온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작가는 그것을 다시 문장으로 펼쳐 보이며 말한다. 삶에는 너무 늦은 시작이 없으며, 오래 걸어온 길일수록 더 깊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고.
『젖은 바지를 말리던 오후』는 한 사람의 지나온 시간을 기록한 소설인 동시에, 인생의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선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응원의 이야기다. 작은 물길이 긴 세월을 돌아 하나의 강이 되듯, 평범한 하루하루가 쌓여 결국 한 사람만의 문학이 되는 과정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