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과 선동은 오래되었다. 그렇다면 왜 지금 우리는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를 말하는가?
『진실의 정치, 허구의 윤리』는 그 이유를 거짓의 증가가 아니라 진실이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받아들여지는 조건의 변화에서 찾는다. 기술은 기억과 판단을 외주화하고, 정치와 언론은 사실을 선택하고 배열한다. AI는 죽은 사람의 목소리까지 복원하고,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알고리즘이 골라준 현실 안에서 살아간다.
책은 이를 세 단계로 추적한다.
1부는 탈진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2부는 그것이 어떻게 개인의 삶과 감각 속으로 스며드는지, 3부는 무엇으로 이에 맞설 수 있는지를 묻는다.
박철웅의 글은 오토마타와 ‘더 터크’, 스티글러의 기술철학을 거쳐 오늘의 AI로 이어지는 계보를 따라간다. 핵심은 기계가 거짓말을 한다는 데 있지 않다. 인간이 기억과 판단을 점점 기계에 맡기면서 스스로 생각할 시간과 능력을 잃어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정보가 아니라, 판단을 늦추고 반론을 허용하는 ‘공적 시간’의 회복이다.
서곡숙의 글은 영화 〈내부자들〉을 통해 진실과 권력의 관계를 보여준다. 같은 사실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진실이 되기도 하고 음모론이 되기도 한다. 언론과 정치, 자본의 결탁은 사실을 감추는 데 그치지 않고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지까지 결정한다.
이현재의 글은 통계와 정부기관의 실제 논란을 통해 탈진실이 어느 한쪽의 거짓말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경제단체는 통계를 자신의 정책 주장에 활용하고, 정부는 그 오류를 정치적 힘의 과시로 확대한다. 그 과정에서 사실보다 의도가 앞서고, 진실은 다시 정치적 도구가 된다.
2부에서는 질문이 개인에게로 이동한다. 이지혜의 글은 AI가 얼굴과 목소리, 기억까지 복제하는 시대에 ‘내 서사는 누구의 것인가’를 묻는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자기 이미지 보호와 AI로 고인의 목소리를 되살린 추모 무대를 대비시키며, 단순한 진위 판별보다 서사의 주권과 출처의 윤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 '탈진실'은 진실의 반대말이라기 보다, 진실 너머의 무엇이다. 이것을 알아가는 과정은 현대 사회에서 생존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이정식의 글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허구는 언제나 나쁜가.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과 〈애프터 양〉은 기억이 애초부터 선택과 편집의 산물이며, 때로는 ‘낭만적 거짓’이 인간을 살아가게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허구는 진실의 반대가 아니라 때로 진실에 접근하는 또 다른 방식이 될 수 있다.
김정희의 글은 이 모든 문제를 문해력과 교육으로 되돌린다. 탈진실은 사람들이 사실을 몰라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고 정보의 맥락을 판단하는 공동의 능력이 약해질 때 커진다. 따라서 교육의 역할은 정답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스스로 질문하고 판단하는 힘을 길러주는 데 있다.
3부에서 책은 저항의 가능성을 찾는다. 임형진의 7장은 연극을 통해 현실 역시 ‘합의된 허구’로 구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진실인가뿐 아니라 누가 무엇을 현실로 승인하는가이다. 연극은 그 구성 과정을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김민정의 글은 AI 시대에 ‘실패할 권리’를 되찾자고 말한다. 효율과 최적화를 약속하는 기술은 실패를 제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