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동안 같이 사는 남자가 있다. 이 남자는 나와 비슷한 점이 거의 없다. 좋아하는 영화, 취미, 수면 습관, 좋아하는 음식 등등 인생의 반생을 같이 살고 있지만 아직도 서로의 취향이 너무나 다르다. 그렇게 다른 남자랑 계속 살다 보니 불현듯 집을 뛰쳐나가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이렇게 공통점이라곤 별로 없는 그 남자는 바로 나의 남편이다.
멋진 남자를 만날 거란 나의 기대와 달리 그는 나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결혼하게 되었고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많던 둘은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갈등의 원인은 아주 사소한 것부터 중대한 일까지 다양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어느 날부터 갑자기 한 방향을 바라보겠다고 작정한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었다. 우리에겐 좋은 날도 많았지만 돌아보면 서로에게 상처를 안겨준 날이 더 많았다.
내가 결혼했던 1990년대 후반에는 결혼한 여성들이 바깥일과 육아와 가사 노동을 모두 감당해야 했다, 이 사실을 모르고 결혼했던 난 모든 것이 어렵고 낯설었다. 남편도 나와 같은 혼란을 겪으며 힘들어했다. 우린 결혼도 엄연히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결혼 10년이 지나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이 책에는 평범한 두 사람의 결혼 생활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결혼은 끊임없이 다름을 증명하는 시간이라는 것, 양쪽 집안의 문화가 우리 관계에 영향을 준다는 것, 서로에 대한 바람보다는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서술했다. 그저 나만 아껴주고 사랑해줄 것이라 믿었던 반쪽이 서로에게 때론 상처와 아픔을 주었을 때 지독히 미워하고 결혼을 후회한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둘이 같이 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서로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열심히 살았는데 세상만사 뜻대로 되지 않아 남편이 너무 밉던 40대 중반 어느 날, 미국의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가 생각났다.
1915년에 태어나 불우한 환경에서도 재즈로 삶을 승화시킨 그녀를 되짚어보다가 내가 얼마나 축복받은 인생인지를 깨달았다. 그녀가 살았던 시대는 여성의 인권이란 단어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던 때였다. 그녀는 주변의 온갖 어려움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흑인들의 삶을 그녀의 노래에 녹여냈고 그녀만의 재즈를 세상에 남겼다.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를 두고 남편과의 이혼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그날, 난 그녀의 <이상한 과일Stranger Fruit>을 몇 번이고 들으며 다시 용기를 냈다. 나보다 먼저 세상을 살아간 어머니들의 삶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난 아이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고 그날 이후 남편과 한 이불을 덮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낙엽이 떨어지던 몇 년 전 어느 늦가을 날 덕수궁을 남편과 걸었다. 노란 은행잎과 발그스름한 단풍잎을 바라보며 남편은 나에게 낙엽을 몇 개 주워서 선물로 주며 활짝 웃었다. 그 순간 난 남편이 그간 나에게 무수히 준 선물의 의미를 깨달았다. 삶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나의 모든 것을 사랑해 주고 참아내 주던 이 남자가 없었다면 그날 덕수궁 단풍이 그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미처 몰랐을 것이다. 남편은 내게 언제나 파란 바다이고 하얀 조약돌이다. 언제나 그가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나에게 내어주었다.
단풍잎을 오래오래 바라보던 그날 난 우리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로 다짐했다. 세월이 흘러 잊히고 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