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송시열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역사 속에는 이상할 만큼 오래 살아남는 이름이 있다.
한 사람의 생은 길어야 한 세기를 넘지 못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이름은 죽음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고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어도 그 이름은 계속 불려 나온다.
우암 송시열이 그렇다.
그는 조선 후기의 거대한 산과 같은 인물이었다. 살아 있을 때도 수많은 사람의 존경과 비판을 동시에 받았고, 죽은 뒤에는 더욱 극단적인 평가의 대상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그는 조선의 도학을 지킨 거인이었다.
누군가에게 그는 지나치게 완고한 성리학자였고, 당쟁을 심화시킨 정치가였다.
어떤 이들은 그를 주자학의 수호자라고 불렀고, 다른 이들은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보수적 지식인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역사는 늘 한쪽의 얼굴만 보여주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진다.
송시열의 삶에는 분명 빛이 있었다. 그는 학문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고, 자신의 신념을 쉽게 바꾸지 않았다. 병자호란 이후 무너진 조선의 자존심을 되찾고자 했으며, 혼란스러운 시대에 무엇이 옳은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러나 그 빛이 때로는 그림자가 되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만큼 다른 견해를 받아들이는 폭은 좁아졌고, 학문적 논쟁은 정치적 대립으로 번졌다. 예에 관한 논쟁은 정쟁이 되었고, 정쟁은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권력투쟁으로 이어졌다.
송시열의 생애를 바라보는 일은 그래서 단순하지 않다.
그를 위대한 선비라고 부르는 순간에도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그 위대함은 무엇에서 비롯되었는가?
그리고 그 위대함이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 무게로 다가갔는가?
송시열은 1607년 충청북도 옥천에서 태어났다. 그의 삶은 임진왜란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고, 병자호란의 치욕이 조선 사회에 깊게 남아 있던 시대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가 성장한 시대는 평온하지 않았다.
명나라가 무너지고, 청나라가 중원을 차지했다.
조선은 국제질서의 급격한 변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병자호란은 단순한 군사적 패배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들이 믿어왔던 세계관이 무너지는 사건이었다.
송시열은 바로 그 상처 위에서 자신의 사상을 만들어갔다.
그에게 주자학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었고,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였으며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었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신념은 인간을 강하게 만들지만, 때로 인간을 좁게 만들기도 한다.
이 책은 송시열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한 것도 아니고, 그를 정치적 당쟁의 원흉으로 몰아세우기 위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한 인간을 지나치게 숭배하거나 지나치게 비난하지 않고, 그가 살았던 시대의 조건 속에서 그의 선택을 바라보고자 한다.
송시열의 빛을 보되
그림자를 외면하지 않고, 그림자를 보되 빛까지 지워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역사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인지도 모른다.
서현제에서
송면규 P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