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오래전부터 같은 질문을 반복해 왔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근본부터 흔드는 물음이며,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가장 깊은 시도다. 우리는 태어나고, 살아가며, 결국 사라진다.
이 자명한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시대마다 달라져 왔다. 인간은 이 유한한 삶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의미를 덧붙였고,
이유를 찾았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을 설명하려 했다.
그 결과로 신이 등장했고,
철학이 체계를 갖추었으며, 과학이 세계를 해부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우주를 신의 계획 속에 위치시키기도 했고, 이성의 질서 속에서 해석하기도 했으며, 자연의 법칙 안에서 이해하려 했다.
이 모든 시도는 서로 다른 길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그러나 이 오래된 질문 앞에서 유발 노아 하라리는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그는 그 질문에 정면으로 답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 자체를 의심한다.
존재의 이유를 찾으려는 인간의 태도, 그 구조를 뒤집는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전제를 해체하고, 그 아래에 놓여 있던 또 다른 가능성을 드러낸다.
그의 통찰은 단순하지만 급진적이다. 존재의 이유는 어디엔가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발견되는 대상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인간은 더 이상 의미를 찾아 헤매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의미를 구성하고, 선택하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전환된다.
이 변화는 단순한 관점의 수정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위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이다.
우리는 더 이상 정해진 답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질문을 새롭게 정의하는 존재가 된다.
의미는 외부에서 주어지지 않으며, 그것을 부여하는 주체 역시 우리 자신이다.
이 글은 바로 그 전환의 지점에서 시작한다.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묻는 자리에서.
서현제에서
송면규 P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