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와 산고양이どんぐりと山猫」는 1921년 이와테 지역 신문에 처음 발표된 뒤, 1924년 겐지가 자비로 펴낸 동화집 『주문이 많은 요리점』의 맨 앞자리에 실린 작품입니다. 겐지 자신이 생전에 직접 골라 책의 문을 여는 작품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그가 이 이야기에 부여한 각별한 애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소년 이치로에게 산고양이가 보낸 이상한 엽서가 도착합니다. 이상하고 성가신 재판이 있으니 꼭 와 달라는 내용입니다. 편지글 형식으로 시작되는 이 도입부부터가 당시 동화로서는 파격적으로 실험적인 구성이었습니다.
숲으로 찾아간 이치로는 서로 자기가 제일 훌륭하다며 밤새 다투는 도토리들의 재판에 얼떨결에 판사로 나서게 됩니다. 눈이 가장 크다느니, 키가 가장 크다느니, 뾰족한 정도가 가장 심하다느니 저마다 억지 주장을 펼치는 도토리들 앞에서 이치로는 한참을 고민합니다.
마침내 이치로가 내놓은 답은 '가장 바보 같고 엉망이고 형편없는 자가 제일 훌륭하다'는 뜻밖의 것이었고, 이 역설적인 한마디로 밤새 이어지던 소란은 거짓말처럼 가라앉습니다. 사례로 금빛 도토리를 받아 든 이치로는 산고양이의 마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다툼 속에서 '진짜 훌륭함이란 무엇인가'를 되묻는 재치 있는 풍자와, 편지글이라는 독특한 형식, 산고양이라는 짓궂으면서도 정중한 캐릭터의 매력이 어우러진 이 작품은 유쾌한 웃음과 함께 잔잔한 깨달음을 남깁니다. 겐지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유머 감각이 가장 두드러지는 편에 속합니다.
일본어 원문과 후리가나, JLPT 레벨별 단어장, 한국어 번역을 함께 실어, 편지글 특유의 정중한 문체와 산고양이의 능청스러운 말투를 원문 그대로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