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부목사 시절, 새신자 소그룹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첫 시간은 서먹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각자 이름 앞에 형용사를 붙여 소개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이름이 김철수라면 ‘용감한 김철수’, 이름이 김영희라면 ‘사랑스러운 김영희’라고 소개하는 식이었다.
첫 번째 사람이 자신을 ‘알면 알수록 멋진 OOO’라고 소개하자, 모두가 박수로 화답했다. 다음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 OOO’라고 소개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 다음은 A의 차례였다. 그는 자신을 ‘세상에서 아무 쓸모없는 OOO’라고 소개했다. 이어서 B는 ‘아무것도 아닌 OOO’라고 소개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자기 자신을 저렇게까지 비하할 수 있을까? 그것은 결코 겸손의 표현으로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소개를 마쳤을 때 나는 A와 B의 이름은 확실히 각인되었지만 내 마음은 몹시 씁쓸하고 안타까웠다.
죠쉬 맥도웰Josh McDowell은 『주의 형상, 나의 형상』에서 왜곡된 자아상을 가진 한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아주 차분해 보이는 한 학생이 편지를 보냈다. ‘저는 제가 실패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 늘 초조합니다. 제 자신을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기가 두렵고, 심지어 그들 가까이에 있는 것조차 무섭습니다. 제 자신이 인간 쓰레기처럼 느껴집니다. 남들에게 거부당할까 봐 너무 두렵습니다.’ 이 표현을 보면, 이 학생은 자신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감도 없고, 자존감도 낮아 보인다. 자신을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인관계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 상태가 더 심해지면, 차라리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낫다는 위험한 생각까지 하게 될 수 있다.
이런 자기 비하는 그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자신을 실패자라고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다. 사실, 나 역시 자존감이 형편없이 낮았던 사람이다. 내 나이 10살 때 선친께서 별세하신 후 우리 가정은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은 좌절되었고, 대신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그 후 검정고시를 합격해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계속되는 가난 속에서 늘 만족함이 없었고, 힘겹게 살아야만 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흘러갔다. 그러던 중, 18살이 되던 해 어느 날, 옆집에 사는 교회 집사님의 인도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그것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외톨이였고 수줍음이 많으며 내성적이고 순진했던 나는 교회 생활에 점차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믿음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신앙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것을 믿는 자들에게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학창 시절에는 남다른 열정으로 믿음생활을 하였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성실히 하였으며, 학업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결과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봄날, 나는 신입생 신체검사를 받을 때의 사건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모든 신입생들은 강당에서 정해진 코스를 따라 시력, 청력, 키, 앉은키, 허리둘레, 치아 상태 등 다양한 검사를 받았다.
나는 신체검사를 받는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