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토 볼라뇨 이후,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혔다고 평가받는 작가 알레한드로 삼브라의 대표작이자, “108쪽원서 기준 88쪽이라는 얇은 분량에 어울리지 않게 무시무시한 깊이”《더 네이션》를 지닌 『분재Bonsái』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가브리엘라 미스트랄과 파블로 네루다라는 탁월한 시인을 배출한 나라, 칠레에서 태어난 알레한드로 삼브라는 산문이 아닌 시詩를 통해 처음 문학 생활을 시작한다. 시인으로서의 경력은 그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겼고, 그것은 훗날의 모든 창작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특히 삼브라의 첫 산문 작품인 『분재』는 형식과 서사를 자유자재로 잇고 자르고 묶는, 이른바 ‘분재’를 키우듯이 집필된 굉장히 도전적인 소설이다. 저자는 특정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시와 산문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들며, 그야말로 통념의 벽을 허무는 혁신적인 글쓰기형식이 곧 내용이 되고, 내용이 곧 형식이 되는 글쓰기를 선보인 것이다. 『분재』를 발표함으로써, 마술적 리얼리즘과 라틴아메리카 아방가르드라는 거대한 자장磁場 속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거센 척력으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삼브라는 “칠레 문학에 있어서 한 시대의 끝을 알리는 전령”《엘 메르쿠리오》이자 “최근에 일어난 가장 위대한 문학적 사건”《라스 울티마스 노티시아스》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출간과 함께 칠레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고, 전 세계의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고 있으며, 보르헤스의 강령“두꺼운 책을 집필하느라 고생하지 말고, 방대한 분량의 책을 요약하듯이 글을 써라.”을 독자적인 방식분재 키우기으로 구현해 낸 문학적 결실이자, 엄혹한 독재 시대피노체트 정권를 살아 낸 모든 생존자들의 부서진 기억을 모자이크처럼 정교하게 짜 맞춘 일종의 기념비로서 우뚝 서 있다.
“결국 그녀는 죽고, 그만이 홀로 남았다. 하지만 사실 그녀, 에밀리아가 죽기 여러 해 전부터 그는 이미 혼자였다. 그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에밀리아라고 불렸으며, 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훌리오라고 불렸고, 앞으로도 계속 훌리오라고 불릴 거라고 하자. 훌리오와 에밀리아. 결국 에밀리아는 죽고 훌리오는 죽지 않았다. 그 나머지는 문학이다.” -본문에서
“결국 그녀는 죽고, 그만이 홀로 남았다.” 이렇듯이 『분재』는 첫 문장에서부터 결말을 일러 준 뒤에 그 사이에 놓인 시간의 간극을 천천히 되짚어간다. 진정한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는 훌리오와 에밀리아는 대학교의 ‘스페인어 통사론’ 시험을 준비하는 스터디 모임에서 함께 공부를 하다가, 평소 좋아하는 문학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그 일을 계기로 차츰 서로에게 빠져들게 된다. 사실상 제대로 읽은 적이 없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했다고 하는 두 사람 사이의 거짓말에서 시작된 이 사랑은, 같은 책을 읽고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가지만, 그들이 아껴 읽던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의 「탄탈리아Tantalia」라는 짧은 소설이 암시하듯이 결국 종말을 향해 나아간다.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뒤, 한때 꿈꾸던 삶에 가닿지 못한 두 사람은 각자의 고독 속에 갇혀 버린다. 유명 작가의 원고를 타이핑하려다가 일이 어그러진 훌리오는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