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조차 질려서 로그아웃한 인간
우리는 타인의 위선을 발견하는 데 놀라울 만큼 뛰어나다.
특권을 놓지 않는 정치인을 비판하고, 정의를 돈으로 바꾸는 언론을 혐오하며, 역사를 왜곡하는 국가와 증오를 선동하는 극우주의자를 규탄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 엄격한 기준이 자신의 돈과 지위, 취향과 생활방식 앞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지는 좀처럼 묻지 않는다.
『언더키즈 케이스』의 아카시 역시 남의 모순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사람이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과 정치권의 탐욕, 저널리즘의 타락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인간이 증오와 선동을 반복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문제는 그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현금 980만 엔을 신고하지 않고 금고에 숨겨두었다는 것이다.
아카시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단순한 탈세라고 부르지 않는다. 저임금과 불황, 일본 정부의 실패, 소수자의 생계와 진보의 존속까지 끌어와 자신의 선택을 설명한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30평짜리 전원주택과 방 하나를 가득 채운 옷은 어느새 ‘고독한 서민의 삶’이 된다.
변명은 길지만 진실은 짧다.
그는 돈을 좋아하고, 세금을 내기 싫고, 옷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송시무스는 이 단순한 진실에 도달하기까지 인간이 얼마나 거대하고 정치적인 언어를 동원할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작품 속 욕설과 독설은 처음에는 정치인과 극우주의자들을 향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칼날은 아카시 자신에게 돌아온다. 남을 심판하기 위해 벼린 언어가 자기 욕망 앞에서 무뎌지는 광경은 잔혹하면서도 우습다.
이 작품에서 악마는 인간을 타락시키지 않는다. 이미 완성된 자기기만을 읽어줄 뿐이다. 아카시가 머릿속으로 늘어놓은 변명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되돌려준 뒤, 악마는 그를 처벌하거나 구원하지 않는다. 더는 이메일을 보내지 않는다.
악마에게 버림받은 아카시는 잠시 자신의 모순을 인정한다.
“나는 반성은 잘한다. 행동을 안 바꿔서 그렇지.”
이 문장은 『언더키즈 케이스』의 심장이다.
아카시는 무지하지 않다.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이해하며, 자신의 궤변을 스스로 해체할 능력도 있다. 그런데도 돈을 신고하지 않고 옷을 버리지 않는다. 다음 날이 되면 평소처럼 헬스장에 가고 발전소에 출근한다. 금고 속 980만 엔도 그대로 남는다.
그래서 이 소설의 결말은 허무한 것이 아니라 지독하게 현실적이다. 사람은 진실을 몰라서만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모든 것을 알고 정확히 반성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조금도 바꾸지 않는다.
『언더키즈 케이스』는 정치 풍자와 악마적 우화, 이메일 형식의 심리극을 결합한 송시무스식 블랙코미디다. 타인의 위선을 비판하는 독자에게도 안전한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아카시의 끝없는 변명을 비웃으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독자는 자신의 금고와 옷방을 떠올리게 된다.
당신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 정의로운 말을 빌리고 있는가.
당신의 반성은 행동을 바꾸기 위한 것인가, 아무것도 바꾸지 않기 위한 것인가.
그리고 당신이 악마에게 마지막 이메일을 받는다면, 과연 답장을 보낼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