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들놈한테 맞은 셈이지 뭐."
성도 모르고 이름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아꾸이라 불렀다는 것만 남았고, 그마저 어떤 글자를 쓰는지 아는 이가 없어 결국 알파벳 Q로 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웨이좡의 사당 한 칸에 살며 남의 집 품을 파는 이 사내에게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언제나 이깁니다.
건달들에게 변발을 잡혀 벽에 머리를 찧고 나면 "아들에게 맞은 셈"이라 여기고 흡족하게 돌아섭니다. 노름판에서 딴 돈을 통째로 잃고 나면 제 뺨을 두 대 때린 뒤, 때린 것은 자기요 맞은 것은 다른 자기라 여기며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스스로를 낮추는 데 있어 자기가 첫째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첫째는 장원 급제도 첫째가 아니냐고 되묻습니다.
루쉰은 이것을 정신승리법이라 불렀습니다. 지고 있으면서 이겼다고 믿는 기술, 바꿀 수 없는 현실을 해석으로 갈아치우는 기술입니다.
혁명이 왔지만, 아Q에게는 오지 않았습니다.
신해혁명이 마을에 닿자 아Q도 혁명당이 되겠다고 나섭니다. 그러나 마을의 수재와 가짜 양놈은 이미 하룻밤 사이에 혁명당이 되어 은복숭아를 가슴에 달았고, 아Q에게 돌아온 말은 "꺼져"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자기가 하지도 않은 강도 사건의 범인으로 붙들려 갑니다. 글을 모르는 그가 자백서에 그리려 한 동그라미는 끝내 아물지 못하고 수박씨 모양이 되고 맙니다. 그가 마지막까지 부끄러워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그 동그라미가 둥글지 못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백 년이 지나도 이 이름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1921년 신문 연재로 세상에 나온 이 작품은 중국 근대 소설의 출발점으로 꼽힙니다. 루쉰은 한 얼빠진 시골 사내의 일생을 빌려,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는 하루도 버틸 수 없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그렸습니다. 아Q는 죽었지만 정신승리법은 죽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스스로를 다독이는 말들 가운데 얼마만큼이 아Q의 것인지, 이 얇은 책이 조용히 물어 옵니다.
이 책은 원문 아홉 장을 빠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