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벗의 얼굴에서 사람은 또 하나의 자기를 봅니다."
기원전 44년, 로마. 카이사르가 암살당하고 공화정이 무너져 가던 그해에 키케로는 이 짧은 책을 썼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그 자신도 정적의 손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서양에서 우정을 논한 가장 오래된 고전은 그렇게 한 시대의 끝자락에서 태어났습니다.
이야기의 화자는 라일리우스입니다. 평생의 벗 스키피오를 막 떠나보낸 노인이지요. 두 사위가 묻습니다. 그 슬픔을 어떻게 견디고 계시냐고. 그 물음에 답하며 노인은 우정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내놓는 물음들은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우리의 물음입니다.
우정은 왜 생기는가. 사람들은 필요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서로 아쉬운 것을 채워 주려고 벗을 사귄다고요. 키케로는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라틴어로 우정을 뜻하는 아미키티아는 사랑을 뜻하는 아모르에서 나왔습니다. 우정은 계산이 아니라 사랑에서 먼저 솟아납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우정을 가장 잘 지킨다고.
벗을 위해서라면 어디까지 해도 되는가. 그라쿠스를 따르던 블로시우스는 재판정에서 "그가 신전에 불을 지르라 했어도 저는 따랐을 것입니다"라고 답합니다. 키케로의 결론은 단호합니다. "벗의 이익을 위해 그리했다는 변명은 그릇된 행동에 대한 온당한 핑계가 되지 못한다."
우정을 무너뜨리는 것은 무엇인가. 평범한 사람에게는 돈이지만, 훌륭한 사람에게는 명예를 둘러싼 겨룸이라고 그는 짚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이 못 미더움을 드러내는 두 가지 방식을 지적합니다. 자기가 잘나갈 때 벗을 내려다보는 것, 그리고 벗이 어려울 때 저버리는 것.
어떻게 헤어져야 하는가. 우정은 **"둘로 찢기보다 실밥을 뜯듯 풀어야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가까웠던 사람과 드러내 놓고 싸우는 것보다 떳떳하지 못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는 오래 남는 문장이 유난히 많습니다. 벗이 몇이나 되는지도 모르면서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