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크레티우스] 그가 남긴 것은 이 산문 한 편뿐입니다.
키케로가 그의 원고를 손봐 세상에 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가 사랑의 미약을 마시고 미쳐 자살했다는 소문도 있으나, 이는 훗날 그의 무신론을 못마땅히 여긴 이들이 지어낸 이야기로 봅니다.
이 산문은 중세 내내 잊혔다가, 1417년 한 필사본 사냥꾼이 독일의 수도원에서 단 한 부를 발견하면서 되살아났습니다. 그 뒤로 보티첼리와 몽테뉴, 뉴턴과 볼테르, 그리고 제퍼슨에게 이 책은 큰 영향을 끼쳤으며, 르네상스 시대 통틀어 최고로 중요한 책으로 여겨집니다.
[옮긴이] 정해윤
오래된 문장이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말을 걸어오는 지점을 찾는 일에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이 책은 유난히 오래 붙들고 있었습니다. 원작이 9,800행에 이르는 운문이기 때문입니다. 행을 그대로 나누어 옮기면 원작의 형식에는 충실하겠으나, 오늘의 독자에게는 오히려 논증의 흐름이 끊깁니다. 그래서 산문으로 풀되, 시의 결까지 함께 풀어 버리지는 않으려 했습니다. 어순과 호흡은 되도록 지키고, "세계의 성벽이 갈라져 열린다"거나 "황금 같은 말씀" 같은 이미지는 손대지 않았습니다. 읽기는 산문처럼 편하되 어딘가 시의 기운이 남아 있기를 바랐습니다.
가장 마음을 쓴 것은 이 책의 두 얼굴입니다. 루크레티우스는 원자와 허공을 논하는 물리학자이면서 동시에 시인입니다. 빛의 속도를 증명하다가 문득 밤하늘을 비추는 물웅덩이를 이야기하고, 달의 위상을 논하다가 봄부터 겨울까지 신들의 행렬을 펼쳐 놓습니다. 그 전환의 순간마다 문장의 온도를 바꾸려 했습니다.
그리고 잊지 않으려 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책이 결국 위로하려고 쓰인 책이라는 사실입니다. 죽음이 두려워 잠 못 이루는 사람에게 건네려고 쓴 글이니까요. 2천 년 전 한 사람이 낯선 이의 두려움을 덜어 주려 애쓴 그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