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羅蕙錫, 1896년4월28일~1948년12월10일
호가 정월晶月이며,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다. 서울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1913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여자미술학교 서양화과에서 유학하여,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꼽힌다. 화가이자 소설가·시인이었고, 동시에 여성운동가·사회운동가로 활동한 근대의 대표적 신여성이다.
유학 시절인 1914년 잡지 『학지광』에 「이상적 부인」을 발표하여 현모양처 규범을 비판했고, 1918년 『여자계』에 단편소설 「경희」를 실었다. 「경희」는 신여성이 자아를 자각해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한국 최초의 페미니즘 소설로 평가된다. 1919년에는 3·1운동에 가담해 약 5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21년 경성일보사에서 한국 여성 최초의 유화 개인전을 열었고, 1922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 해마다 출품하여 특선과 입선을 거듭했다. 1927년 남편 김우영과 세계 일주 여행에 올라 파리에서 야수파 화가 비시에르에게 그림을 배웠으며, 이 무렵의 대표작으로 「무희」와 「스페인 해수욕장」이 있다.
1930년 이혼한 뒤에는 사회의 냉대 속에서도 붓과 글을 놓지 않았다. 1934년 『삼천리』에 「이혼 고백서」를 발표하여 여성에게만 정조를 강요하는 사회를 정면으로 비판했고, 「신생활에 들면서」1935를 통해 여성 해방과 남녀평등을 역설했다. 소설 「현숙」1936·「어머니와 딸」1937, 시 「노라를 놓아주게」 등도 이 시기의 산물이다. 정조와 모성애가 본능이 아니라 사회가 강요한 관념이라는 그의 주장은 시대를 앞선 것이었다.
만년에는 질병과 가난, 사회적 고립 속에서 방랑하다가 1948년 무연고자로 세상을 떠났다. '여자도 사람이다'라는 그의 외침은 한국 근대 여성문학과 여성운동의 첫 장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