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종종 내게 묻는다.
"아이가 몇 명이에요?"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일곱 남매예요."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어떤 이는 부럽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힘들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 한마디 뒤에 숨겨진 이야기는
알지 못한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일곱 아이의 엄마가 될 생각은 없었다.
2008년 첫아이 딸이 태어났다.
작은 손으로 내 손가락을 꼭 잡던 그날, 나는 엄마가 되었다.
2010년에는 둘째 아들 태원이가 태어났다.
동그란 눈, 환한 웃음, 사람을 좋아하던 아이.
그리고 막내딸이 태어나면서 우리는 다섯 식구가 되었다.
그저 평범한 가족이었다.
주말이면 공원으로 나가고, 바다를 보러 가고, 벚꽃이 피면 도시락을 싸 들고 꽃길을 걸었다.
그 평범한 일상이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행복은 언제나 예고 없이 흔들린다.
2016년 어느 날, 태원이는 갑작스럽게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병원 복도에서 의사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한 문장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설마 우리 아이가?'
그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엄마는 믿지 못했다.
며칠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치료를 시작하면 웃으며 집으로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은 내 바람보다 훨씬 빨랐다.
진단을 받은 지 불과 2주.
나는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품에서 떠나보내야 했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내 시간만 멈춘 것 같았다.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웠고, 밤이 오는 것이 더 두려웠다.
집 안에는 아이의 장난감이 그대로 있었고, 벗어 놓은 신발도 그대로였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태원이만 없었다.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엄마'라는 이름이었다.
엄마는 아이를 지켜 주는 사람이라고 믿었는데, 나는 내 아이를 지켜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 슬픔 속에서도 내 삶은 멈출 수 없었다.
태원이를 빨리 다시 만나야 된다는 생각에 아이를 바로 가지기로 했고
태원이의 49재를 끝날무렵 아이를 가졌다 .
입덧으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면서도 아이를 품어야 했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어야 했다.
남겨진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엄마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태원이를 보내고 난 뒤, 나는 자주 꿈을 꾸었다.
꿈속의 태원이는 울지 않았다.
아프지도 않았다.
평소처럼 웃으며 뛰어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