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 한도윤, 서른넷.
자격증만 따면 인생이 달라질 줄 알았다.
현실은 달랐다. 계약은 다른 직원에게 빼앗기고, 실적은 사무실 꼴찌. 카드값과 월세는 밀렸으며 이번 달에도 계약을 못 하면 사실상 해고다.
그런 도윤에게 이상할 정도로 조건 좋은 의뢰가 들어온다.
재개발 구역 한복판에 남아 있는 낡은 상가, 청운상가.
등기와 건축물대장에는 열두 개의 점포가 존재한다.
그런데 도윤이 직접 세어 보니 점포는 열한 개뿐이다.
관리인은 착각이라며 웃는다.
하지만 자정이 되자 복도 끝에 낮에는 없었던 문이 나타난다.
12호. 임대문의.
그 문 앞에 젖은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서 있었다.
“저 여기 계약할 수 있어요?”
도윤은 다음 날 알게 된다.
그 여학생이 십칠 년 전에 죽었다는 것을.
청운상가에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점포들이 있다.
망자는 생전에 끝내 떠나지 못한 장소를 찾아와 계약을 요구하고, 도윤이 그 계약을 성사시키면 사라졌던 점포도 하나씩 문을 닫는다.
계약서의 특약은 언제나 단 하나.
‘임차인의 미해결 사항이 해소되는 즉시 본 계약은 종료된다.’
도윤은 처음에는 돈 때문에 계약한다.
그러나 계약이 이어질수록 이상한 사실을 깨닫는다.
망자들은 우연히 이곳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죽음에는 청운상가와 연결된 오래된 사건이 숨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도윤 자신이다.
그는 분명 이곳에 처음 왔다.
그런데 계단의 흠집도, 잠긴 옥상문의 열쇠 위치도 알고 있다.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 지워진 어느 여름밤.
사라진 아버지.
불에 그을린 계약서.
그리고 도윤을 볼 때마다 이름 대신 이렇게 부르는 늙은 관리인.
“이번에는 끝까지 중개해야지.”
마침내 모든 망자의 계약이 끝나고 마지막 점포만 남는다.
도윤은 봉인되어 있던 계약서를 연다.
임대인 한도윤.
임차인 미정.
그리고 특약사항 아래에는 아직 오지 않은 날짜가 적혀 있다.
계약 종료일은 임대인의 사망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