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날 화실, 내 갤러리 이름이다.
내 갤러리는 우리 집, 온방의 벽과 거실에 가 가득하고 눈이 쌓인 집, 발레하는 소녀, 피아노 앞의 소녀들르누아르 습작, 남해의 봄, 별 이야기, 유채꽃 등.
나는 매일 보는 그림 앞에서 날마다 보고 또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내 자식처럼 사랑하는 그림이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그 당시 전남에서 최고의 시설과 책을 자랑하는 도서관이었다. 우리 교실이 도서관 아래층에 있어서 수업이 끝나면 우리는 매일 도서관에서 살았다. 손가락만 한 엄지 공주가 개구리를 타고 연못에 떠있는 그림책을 보며 나는 그 연못 속에 내가 있었고 내가 엄지 공주였다. 우리가 공부하는 교실은 나무로 된 마룻바닥 교실이었으며 그 교실은 구멍이 숭숭 뚫려 가끔 쥐가 나와서 온 교실을 아수라장을 만들곤 했다. 그러한 교실에서 공부하다가 수업이 끝나면 반짝 빤짝 빛나는 고급스러운 책상과 의자가 있는 도서관은 장성급 호텔처럼 급이 높은 고급 진 장소였다. 도서관은 우리에게 특별한 장소였으며 그림책에서부터 글이 빽빽한 보물섬 암굴 왕 등등, 책 속에 묻혀 살았다. 그 시절은 도서관 아니면 책을 읽을 수 없었던 시절이다.
초등학교 시절 이웃집 언니가 내 꿈을 물은 적은 있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듣던 이웃집 언니는 그것은 꿈이 아니라며 조금 의아해했다. 하지만 지금도 굳이 내 꿈을 말하라면 나는 좋은 사람이 최고 좋다. 그러니까 내가 화가가 되어야 되겠다고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오십 대에 그림을 시작했다.
학창 시절 미술시간에 실기점수는 늘 만점을 받았지만 내가 그림을 잘 한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림이라는 것은 정말 타고난 예술적 재능이 있는 사람만이 화가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언젠가는 이젤을 들고 야외에 나가 그림을 그리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 살아왔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보내어질 때 단 한 사람 유일한 자기로 태어난다. 그는 온 우주를 통틀어서도 하나밖에 없는 모습으로 그가 가진 인생이라는 밑천을 가지고 태어난다. 나는 살아오면서 내가 가진 밑천은 무엇인지 생각한다고 하고 살았으나 내가 있는 그 환경에서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결혼해서 자식 낳고 남편 뒷바라지하고 무엇보다 남편과 자식이 우선이었던 시간을 살았다. 빈 둥지 증후군이 올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야 내 안에 어렴풋이 내 존재를 확인해도 좋은 시간이 되었다. 나는 그림에 문외한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내 안의 내가 어렴풋이 손짓하며 나를 깨우고 있었다. 그래 이제 너를 사랑해야지, 너를 사랑해도 좋을 시간이 되었으니까!
무조건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 속에는 나도 모르고 살았던 인생들이 하나씩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림 소재를 찾는 날이면 너를 어떻게 그려줄까 가슴 설레며 퇴근시간만을 기다렸다.
어느 날 푸른 숲이 우거진 길을 지나 멀어진 가느다란 길 끝 어디선가 빛을 비추고 있는 너였으며 때로는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들의 속삭임을 엿듣는 순간들도 있었다.
나는 그림 속에서 수많은 나를 만나고 있었다.
2018년 오월 그림 전시회를 앞두고 분주히 이젤 앞에서 물감과의 시간들은 카이로스의 시간들이었다. 이젤 앞에서의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