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 끝에서 비로소 만나는 진실
오래된 경전을 읽다 보면 문득 걸음을 멈추게 하는 문장을 만난다. 뜻이 선뜻 이어지지 않고, 기록된 인물의 말과 행동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그 의문을 자신의 부족함 탓으로 돌린다. 성현과 경전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 때문에, 이해되지 않는 대목마저 애써 받아들이기도 한다.
청대의 고증학자 최술崔述, 1740~1816, 곧 최동벽崔東壁은 바로 그 지점에서 질문을 시작하였다.
이 기록은 처음부터 이렇게 전해졌는가.
후대의 기억과 소문이 덧붙은 것은 아닌가.
서로 다른 시대의 인물과 사건이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진 것은 아닌가.
성현이 하지 않은 말이 어느새 성현의 가르침으로 굳어진 것은 아닌가.
《고신록제요考信錄提要》는 최술이 평생에 걸쳐 저술한 《고신록》의 문제의식과 연구 방법을 집약한 책이다. 그는 옛 기록이라는 이유만으로 믿지 않았고, 이름난 학자의 말이라는 이유로 검증을 멈추지 않았다. 경전과 사서, 제자서와 잡설을 서로 대조하고, 인물의 생존 시기와 사건의 선후 관계, 제도의 변화와 문헌의 성립 과정을 치밀하게 살폈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도 오랫동안 반복되면 진실의 모습을 갖게 된다. 한 사람의 불확실한 기억이 여러 사람의 입을 거치고, 하나의 책에 실린 이야기가 다시 다른 책으로 옮겨지면, 마침내 누구도 그 출처를 묻지 않게 된다. 도덕적으로 훌륭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일수록 사람들은 그것이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확인하기보다 믿고 싶어 한다.
최술은 그렇게 쌓인 후대의 과장과 부회를 조심스럽게 걷어냈다. 그것은 성현을 깎아내리기 위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후대인이 꾸며낸 모습을 벗겨내고 성현의 진실한 모습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간절한 노력이었다.
그가 말한 ‘고신考信’은 모든 것을 의심하고 부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글자 그대로 ‘고찰하여 믿는다’는 뜻이다. 근거가 충분한 것은 받아들이고, 부족한 것은 판단을 보류하며, 알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는 채로 남겨두는 일이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꾸미지 않고, 근거가 닿는 곳까지만 말하는 학문적 정직함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최술은 공자를 존경하였기에 공자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믿지는 않았다. 공자가 하지 않은 말을 그의 말로 전하고, 실제로 하지 않은 행동을 그의 행적으로 꾸미는 것은 공자를 높이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참모습을 가리는 일이라고 보았다. 경전을 존중한다면 경전에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되며, 성현을 존경한다면 후대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의 삶에 함부로 보태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 엄격한 원칙을 따라 최술은 평생 옛 기록과 마주하였다. 사람들이 익숙하게 믿어온 이야기를 의심하고, 이름난 학자의 오류를 지적하며, 세월 속에서 진실처럼 굳어진 기록을 다시 살피는 길은 외롭고 고단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확실하지 않은 것을 확실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설명하여 자신의 지식을 드러내려 하지도 않았다. 그의 문장에는 진실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학자의 고독과 절제가 배어 있다.
《고신록제요》에는 그가 《고신록》을 저술한 까닭과 학문적 원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록이 전해지는 동안 어떻게 변형되는지, 기억과 소문이 어떻게 사실처럼 굳어지는지, 위서와 잡설은 어떠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