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생각은 어디서 왔는가. 정말, 당신 것인가?”
이탈리아어를 몰라도 AI에게 부탁하면 몇 초 만에 정중한 비즈니스 메일이 완성된다. 여행 계획도, 사소한 고민도 이제는 AI에게 먼저 묻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지금까지 정말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좀비 뇌 AI 시대, 인간은 무엇을 잃어 가는가》는 이 익숙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질문이 전혀 새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400년 전, 이집트 신화 속 발명의 신 테우트는 자신이 만든 ‘문자’를 들고 타무스 왕을 찾아갔다. “왕이시여, 이것은 사람들을 더 지혜롭게 만들고 기억력을 좋게 해줄 약파르마콘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왕의 대답은 정반대였다. “문자는 사람들에게 망각을 가져올 것이오. 사람들은 스스로 기억해 내려는 노력 대신, 그것에 기대는 법부터 배우게 될 테니까.”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 기록된 이 대화는,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 자체를 대신할 수도 있다’는 걱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인류가 문자라는 ‘생각의 보조 도구’를 손에 쥔 순간부터, 편리함과 사유는 이미 저울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던 셈이다.
《좀비 뇌 AI 시대, 인간은 무엇을 잃어 가는가》는 이 오래된 저울질이 2,400년 만에 훨씬 더 무거운 무게로 되돌아왔다고 말한다. 문자는 기억의 일부를 덜어 주는 데 그쳤지만, AI는 검색하고 판단하고 글을 쓰는, 사유의 거의 전 과정을 대신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검색창 대신 대화창이 켜지고, 고민의 시간 대신 해결책이 먼저 도착하는 시대. 이 낯익고도 새로운 갈림길 앞에서, 지금 그 질문을 다시 꺼내 든다.
저자는 지금 우리는 AI가 없던 시대와 AI가 일상에 깊숙이 스며든 시대 사이에 놓인, 이른바 ‘끼인 세대’라고 말한다.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서 인터넷이 일상이 된 시대로 넘어갔던 것처럼, 우리는 지금 또 하나의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익숙했던 방식과 새롭게 등장한 방식 사이에서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남겨야 할지 고민하며 적응해야 하는 세대인 것이다.
저자는 AI를 깊이 들여다볼수록, 관심의 무게중심을 기술 자체에서 그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본질이 무엇인지 묻기 위해 근대 철학의 물음을 가져온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한 끝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가 존재의 증거로 삼은 것은 주어진 완벽한 답이 아니라, 스스로 의심하고 되묻는 행위 자체였다. 편리함이 늘어난 만큼 인간의 내면적인 힘이 조용히 줄어들고 있다는 감각, 저자가 말하는 ‘사유’는 바로 이것이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좀비 뇌’는 바로 이 힘을 잃어버린 상태를 가리킨다. 육체는 멀쩡히 살아 있지만, 스스로 묻고 답하고 의심하는 힘, 즉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고유한 사유가 서서히 증발해 버린 상태다.
《좀비 뇌 AI 시대, 인간은 무엇을 잃어 가는가》는 인간의 사유를 지탱해 온 네 가지 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간다. 애써 찾아야 얻어지는 ‘결핍’, 막히고 부딪히는 지점에서 단련되는 ‘마찰’, 다른 사람과 나누며 넓어지는 ‘연결’, 그렇게 얻은 것이 마침내 내 것으로 굳어지는 ‘내재화’. AI는 이 네 걸음을 하나씩 대신 걸어 줄 뿐, 그 과정 끝에서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