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80년이 지나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해방된 지 80년이 넘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친일을 이야기한다.
누가 친일파였는가. 왜 해방 직후 친일 청산은 실패했는가. 친일 경력자들은 어떻게 새로운 국가에서 다시 권력과 부를 얻었는가. 친일재산은 어떻게 남았고, 후손들은 무엇을 물려받았는가. 그리고 왜 오늘날까지도 일본에 우호적인 태도는 친일로, 일본에 비판적인 태도는 반일로 쉽게 규정되는가.
《친일의 역사, 반일의 정치》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친일파의 명단을 다시 늘어놓는 책이 아니다. 누가 친일파인가를 밝히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친일의 역사가 해방과 함께 끝나지 않았으며 어떻게 현재의 정치와 사회 속에서 다시 살아났는가를 추적한다.
저자는 먼저 식민지 조선에서 사람들의 선택이 결코 친일과 독립운동이라는 두 가지 범주만으로 설명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식민지배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사람, 생존을 위해 순응한 사람, 현실과 타협한 사람,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한 사람이 함께 존재했다. 따라서 ‘친일파’라는 말을 역사적으로 사용하려면 일본과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식민지배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책은 이어 해방 직후로 이동한다. 친일 청산은 왜 시작되었고, 반민특위는 무엇을 하려 했으며, 왜 새로운 대한민국은 스스로 만든 법과 제도를 통해 친일을 끝내지 못했는가. 그 배경에는 일제강점기의 인적 연속성뿐 아니라 국가건설의 현실, 경찰과 행정조직의 문제, 냉전과 반공주의, 정치권력의 선택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친일의 유산은 사람에게만 남은 것도 아니었다. 재산과 경제적 기회, 행정과 군사 경험, 사회적 네트워크, 교육과 명예,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를 기억하고 망각하는 방식이 다음 시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책은 모든 부유한 가문을 친일의 후손으로 규정하거나 오늘날의 사회문제를 모두 친일의 결과로 돌리지 않는다. 무엇이 실제로 이어졌고 무엇이 훗날의 정치적 해석인지를 구분하면서 친일의 유산을 바라본다.
특히 중요한 것은 후손의 문제다. 조상의 죄가 후손에게 상속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상이 남긴 재산과 교육기회, 사회적 자원이 후손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이 책은 ‘조상의 죄’와 ‘조상이 남긴 결과’를 분리해 바라보면서, 역사적 책임과 개인의 책임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후반부에서는 친일과 반일이 어떻게 정치적 언어가 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친일이라는 말은 어느 순간 역사적 행위를 가리키는 개념을 넘어 현재의 정치적 상대를 공격하는 낙인이 되었고, 반일 역시 식민지배에 대한 역사적 기억을 넘어 하나의 정치적 정체성으로 확대되었다. 일본과의 외교협력을 주장한다고 해서 식민지 시대의 친일파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며, 일본을 강하게 비판한다고 해서 언제나 역사적으로 더 올바른 정치적 입장을 갖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친일을 잊어야 하는가.
이 책의 대답은 단호하면서도 간단하다.
잊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과거에 지배받을 필요도 없다.
친일의 역사는 기억해야 한다. 식민지배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사람들의 행위는 정확하게 기록되어야 하고, 피해자의 기억도 보존되어야 한다. 친일재산의 문제 역시 법과 증거에 따라 다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