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3년 거란의 제1차 침략부터 1019년 강감찬의 귀주대첩까지, 약 30년에 걸친 고려-거란 전쟁의 한복판에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향한 한 무인이 있었다. 진주 출신의 중랑장 하공진. 그는 압록강 최전방 경비대장으로 국경을 지켰고, 동북면 근무 후 영전하여 목종의 곁을 근접 경호했으며, 거란의 2차 침공을 앞두고는 억울하게 남해의 섬으로 유배를 떠난다.
그러나 강조가 이끈 고려군이 크게 패하고 나라가 존망의 기로에 섰을 때, 그는 사면 복권되어 나주로 피란 중이던 현종의 뜻을 받들어 항복 문서를 품고 거란 진영으로 향한다. 목숨을 건 교섭 끝에 거란의 철군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정작 자신은 인질로 잡혀 거란 땅에 남게 된다. 황제의 거듭된 회유와 협박에도 끝내 두 마음을 품지 않았던 그는, 마침내 이역만리 타국에서 순국한다.
《고려사》 《요사》 《동국통감》 《세종실록지리지》 등 정사의 기록과 족보, 고려-거란전쟁 자료를 촘촘히 엮어 되살린 이 장편소설은, 짧고 건조한 사료의 행간에 묻혀 있던 하공진이라는 인물에 상상력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무덤조차 남기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고려시대 중후반까지 ‘하공진 놀이’로 그 이름이 전해졌던 인물. 저자는 10년에 걸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조선에 이순신이 있었다면, 고려에는 하공진이 있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