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의 원죄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삶과 시대
인류에게 원자의 비밀을 선물한 천재는, 자신이 만들어낸 힘 앞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프로메테우스의 원죄』는 20세기 과학사의 가장 극적인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삶을 따라가며, 한 천재가 어떻게 세계를 바꾸는 과학자가 되었고, 어떻게 그 힘의 책임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 속에서 추락했는지를 그린 장편 평전이다.
뉴욕에서 태어난 어린 오펜하이머는 뛰어난 지적 능력과 예술적 감수성을 동시에 지닌 소년이었다. 하버드와 케임브리지에서의 시행착오를 거쳐 괴팅겐으로 향한 그는 양자역학의 중심에서 자신의 진정한 재능을 발견한다. 이후 버클리에서 새로운 세대의 이론물리학자들을 길러내며 미국 이론물리학의 황금기를 이끌었고, 보른-오펜하이머 근사와 중성자별 연구 등으로 자신의 이름을 물리학사에 남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는다.
1942년,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비밀 연구소 로스앨러모스를 이끌 과학 책임자로 선택된다. 그는 서로 다른 분야의 최고 과학자들을 한곳에 모아 사막 한가운데 비밀 도시를 건설하고, 군의 보안 체계와 과학자들의 자유로운 토론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과학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를 지휘한다.
그리고 1945년 7월 16일, 트리니티 실험의 섬광이 뉴멕시코 사막을 가른다.
그 순간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만들어낸 과학적 성취의 위대함과 동시에 그것이 가져올 파괴의 가능성을 마주한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더 이상 단순한 무기 개발자가 아니라, 핵무기를 인류가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과학자이자 정책가가 된다. 닐스 보어가 제시했던 국제적 핵 통제와 '열린 세계'의 구상은 그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하지만 냉전은 그의 이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소련의 핵실험 이후 미국 내부에서 수소폭탄 개발을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자, 오펜하이머는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하는 입장에 선다. 국제적인 핵 통제를 주장했던 그의 태도는 일부 권력자들에게 불신의 대상이 되었고, 루이스 스트라우스와 에드워드 텔러 등과의 갈등, 과거의 좌익 인맥, 그리고 오래전의 슈발리에 사건까지 다시 소환된다.
마침내 1954년, 오펜하이머는 국가의 심판대에 선다.
보안 청문회에서 그의 과거와 인간관계, 정치적 성향, 과거의 진술이 하나씩 공격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그의 충성심과 헌신을 옹호했지만, 청문회는 결국 그의 보안 허가 박탈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한때 미국 핵정책의 중심에 있었던 과학자가 자신이 봉사했던 국가의 권력으로부터 조용히 추방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몰락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식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잃은 뒤에도 그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지적 공동체를 이끌었고, 과학과 문화, 인간 정신의 관계를 성찰하는 사상가로 자신의 목소리를 이어갔다. 1963년에는 엔리코 페르미상을 받으며 국가와의 화해를 상징하는 장면을 맞이했고, 1967년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삶은 '핵 시대의 양심'과 '비극적인 천재'라는 상반된 평가 속에서 계속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반세기가 훨씬 지난 2022년, 미국 에너지부는 1954년 보안 허가 박탈 결정이 절차적으로 근본적으로 불공정했다며 이를 공식적으로 무효화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