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지 않았다. 그리고 시작된 뒤에도, 아무도 그 규모를 알지 못했다.
『1950, 세기의 충돌』 제2권은 전쟁의 문턱에서 한 걸음 더 안으로 들어간다. 1950년 6월 25일 이전, 서울과 평양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가. 워싱턴과 도쿄는 한반도의 위기를 어떻게 읽었으며, 모스크바와 베이징은 어떤 계산을 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38선에서 시작된 충돌은 어떻게 미국과 유엔, 나아가 중국까지 끌어들이는 국제전으로 확대되었는가.
이 책이 붙드는 것은 하나의 질문이다. 정보가 없었던 것인가, 아니면 정보는 있었지만 그 의미를 믿지 않았던 것인가.
미 극동군사령부에는 전쟁 이전부터 북한군의 병력 증강과 이동, 공격 가능성을 알리는 보고가 들어오고 있었다. 실제 개전 시점과 가까운 때를 공격 가능일로 지목한 문건도 있었다. 그러나 정보가 있었다는 사실과 전면전이 임박했다고 판단하는 일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중국의 개입 경고가 존재했다는 사실과 중국군이 대규모로 참전하리라 믿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전쟁의 확대 과정에서는 이 차이가 반복해서 나타났다.
제2권은 미 국무부 외교문서와 상원 청문회 속기록, 유엔 안보리 결의와 한국위원단 보고서, 러시아에서 기밀 해제된 소련 대사 전문, 그리고 중국 『인민일보』의 기사와 논설을 나란히 놓는다. 전쟁 첫날 평양이 모스크바에 보낸 보고, 개전 훨씬 전에 이미 골격이 잡혀 있던 유엔 결의안, 장면이 이승만에게 보낸 기밀 서한이 원문과 함께 실린다.
서로 다른 국가의 기록을 대조하는 이유는 어느 한쪽이 옳다는 결론을 미리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같은 시각 서로 다른 곳에서 작성된 문서들을 나란히 놓을 때, 당시의 판단과 오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비로소 입체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그들은 과연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