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 1872~1896는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소설가로, 스물네 살의 짧은 생애 동안 「키 재기」, 「탁한 강」, 「열사흗날 밤」을 비롯한 스무 편 남짓의 단편을 남겼다. 이 전자책은 그중 「거문고 소리」와 「반고 시라베」 두 편을 함께 묶었다.
1893년 『문학계』에 발표된 「거문고 소리」는 상·하 두 편으로 이루어진 초기 단편이다.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아버지마저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면서 도둑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쓴 소년 와타나베 긴고는, 세상과 사람을 원망하며 점점 더 비뚤어져간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에서 홀로 거문고를 뜯는 여인 시즈의 애처로운 가락에 이끌려 밤마다 그 집 근처를 서성이게 되고, 달빛 아래 흐르는 맑은 거문고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인간다운 감정을 되찾는다. 예술이 지닌 정화의 힘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함께 실은 「반고 시라베反古しらべ」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옛 원고와 일기를 정리하며 쓴 짧은 수필이다. 곰팡내 나는 헌 종이 뭉치 속에서 아버지가 손수 적어준 어릴 적 와카 습작, 그리고 아버지가 세상을 뜨기 한 달 전 참가했던 가회歌會에서 뒤늦게 도착한 입선 소식을 마주하며, 작가는 더는 곁에 없는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과 애도를 담담하고도 절절한 필치로 풀어낸다. 이치요 자신의 실제 가족사가 짙게 배어 있는, 사소설적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이 전자책은 두 작품의 일본어 원문에 후리가나를 병기해 원문 독해를 돕고, 문단별 단어장을 수록해 학습 효율을 높였다. 원문의 서정적인 문체와 리듬을 살린 한국어 번역을 함께 실었으며, 각 작품의 정서에 어울리는 우키요에거문고를 뜯는 미인, 눈 내리는 겨울밤 풍경를 컬렉션으로 함께 수록해 시각적으로도 작품의 여운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