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 1872~1896는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소설가로, 스물네 살의 짧은 생애 동안 「키 재기」, 「탁한 강」, 「열사흗날 밤」을 비롯한 스무 편 남짓의 단편을 남겼다. 1895년 마이니치 신문에 발표된 「처마를 지키는 달」은 신분을 뛰어넘는 그리움과 정절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여인의 내면을 밀도 있게 그려낸 작품으로, 그녀의 예리한 심리묘사가 두드러지는 초기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대장장이의 아내이자 어린아이의 어머니인 여인은, 남편이 늦게 돌아오는 밤 홀로 창을 열고 달빛을 바라보며 한때 몸종으로 지냈던 사쿠라마치 댁 젊은 나리를 향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다. 성실한 남편의 다정함과 은혜를 잘 알면서도, 차마 뜯어보지 못하고 간직해온 나리의 편지 열두 통을 꺼내 읽으며 스스로의 마음을 시험하는 여인. 격정과 자책, 체념이 교차하는 긴 독백 끝에 그녀가 내리는 선택은, 신분과 정절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을 냉철하게 포착해낸 히구치 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 전자책은 일본어 원문에 후리가나를 병기해 원문 독해를 돕고, 문단별 단어장을 수록해 학습 효율을 높였다. 원문의 격정적인 문체와 리듬을 살린 한국어 번역을 함께 실었으며, 달빛 아래 난간에 기댄 여인을 그린 2대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우키요에를 컬렉션으로 함께 수록해 작품의 정서를 시각적으로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