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여덟, 다시 설렜다.
한서윤에게 오후 세 시는 하루 중 가장 길고 쓸쓸한 시간이었다.
중학교 도서관에서 삼십오 년을 일하고 퇴직한 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자녀들마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 집은 너무 조용했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할머니로 살아온 시간은 길었지만 정작 한서윤이라는 사람에게 무엇이 남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서윤이 매일 오후 세 시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같은 벤치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일흔한 살의 윤재호.
그 역시 먼저 떠나보낸 아내에 대한 기억을 품고 혼자 살아가는 사람이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
함께 벤치에 앉고, 날씨를 이야기하고, 읽던 책을 보여주고,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넨다.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오후 세 시가 되면 서로를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비 오는 날, 재호가 처음으로 묻는다.
“내일도 여기 와주실래요?”
그 짧은 한마디 이후 서윤의 평범했던 하루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외출하기 전 거울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되고, 혼자 마시던 차보다 둘이 나누는 차가 더 따뜻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군가 자신을 기다린다는 사실만으로도 내일이 궁금해진다.
하지만 늦게 찾아온 사랑이라고 해서 마음까지 단순한 것은 아니다.
먼저 떠난 사람에 대한 미안함, 자녀들의 걱정, 주변의 시선, 그리고 이 나이에 다시 사랑해도 되는가 하는 두려움.
두 사람은 사랑 앞에서 젊은 날과는 다른 질문을 마주한다.
남은 시간이 짧을지도 모르기에 물러서야 할까.
아니면 남은 시간이 소중하기에 더 용기를 내야 할까.
거창한 운명보다 매일 같은 시간에 기다려주는 한 사람의 소중함을 그린 따뜻한 실버 로맨스.
사랑하기에 늦은 나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포기하기에는 아까운 오늘이 있을 뿐이다.
이 이야기를 덮는 순간, 당신에게도 내일 만나고 싶은 한 사람이 떠오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