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이 사라지기 전에는 공평하고 정의로운 분배란 있을 수 없고, 세상이 행복하게 다스려질 수도 없소.”
1516년 라틴어로 발표된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이상 사회를 빌려 시대를 비추는 정치 풍자 소설의 원형이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유토피아 문학’이라는 장르 자체를 낳은 고전이다. 소설은 사절 임무로 플랑드르에 파견된 ‘모어’가 벗 페터 힐레스의 소개로 라파엘 히슬로데이라는 인물을 만나며 시작된다. 신대륙을 찾아 나선 항해 끝에 섬나라 유토피아에 닿아 그곳에서 여러 해를 지냈다는 히슬로데이는, 사유 재산도 화폐도 없이 하루 여섯 시간 노동만으로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낯선 사회의 풍경을 두 사람 앞에 펼쳐 놓는다.
히슬로데이의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예전 캔터베리 대주교 존 모턴 추기경의 식탁에서 벌어졌던 논쟁을 회상하며, 도둑질한 자를 교수형에 처하면서도 정작 도둑질을 낳는 가난은 방치하는 잉글랜드의 모순을 꼬집는다. “본성이 온순해서 다루기도 쉬운 여러분의 양들이 이제는 사람을 잡아먹고, 마을만이 아니라 소읍까지 텅 비게 만든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지경입니다.” 양털 값을 좇아 농민을 땅에서 내쫓은 인클로저를 겨눈 이 한 문장은, 오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소설을 대표하는 구절로 꼽힌다.
사유 재산이 없어 탐욕이 설 자리를 잃은 사회, 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 모어가 히슬로데이의 입을 빌려 그려 낸 유토피아는 허황된 공상이 아니라 당대 잉글랜드의 현실을 정확히 겨눈 거울이었다. ‘유토피아’라는 말을 낳고 이상 사회를 그리는 모든 후대의 상상력에 원형을 제공한 이 책은, 국가와 정의와 소유를 둘러싼 물음이 여전히 유효한 오늘날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