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없었다면 한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지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없었다면 조선은 스스로 근대화에 성공했을까? 산업화는 더 빨리 이루어졌을까, 아니면 오히려 더 늦어졌을까? 대한제국은 독립국가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혹시 일본 대신 러시아나 청나라의 영향권에 들어갔을까? 그리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을까?
이 책은 이 질문에 단정적인 답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온 한국 근현대사의 ‘필연성’에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이미 일어난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모든 사건이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조선의 쇠퇴가 있었고, 일본의 침략이 있었으며, 식민지배를 거쳐 해방과 분단,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가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 미래는 전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조선에도 여러 개혁의 가능성이 있었고, 대한제국에도 독립적인 근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었으며, 한반도의 국제적 운명 역시 하나의 경로로만 결정되어 있지는 않았다.
이 책은 먼저 조선 후기의 구조적 위기에서 출발한다. 양반 중심의 신분질서, 취약한 국가재정, 세도정치, 군사적 취약성, 늦어진 제도개혁을 살펴보면서 조선이 왜 새로운 국제질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는지를 분석한다. 그러나 조선의 실패를 곧바로 일본의 식민지배와 연결하지 않는다. 조선이 개혁에 실패했다는 사실과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서로 다른 역사적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어 일본의 메이지유신과 조선의 개항을 비교한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의 질서가 어떻게 달라졌으며, 일본은 어떻게 국가재정과 군사력, 교육과 산업, 철도와 통신을 연결하여 근대국가의 역량을 강화했는지를 살펴본다. 동시에 조선과 대한제국에서도 개화정책과 갑오개혁, 동학, 광무개혁 등 다양한 변화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조명한다.
식민지 시대에 대해서도 한쪽의 시선만을 택하지 않는다. 철도와 도시, 교육, 행정, 공장, 전력시설과 시장의 확대 등 실제로 일어난 경제적·사회적 변화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구분한다. 경제성장은 성장이고, 주권은 주권이다. 근대적 제도가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그 제도가 누구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 책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식민지 근대화 논쟁에서 흔히 놓치는 ‘유산의 재구성’이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식민지 시기의 모든 제도와 시설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 아니었다. 농지개혁과 귀속재산 처리, 교육제도의 재편, 한국전쟁과 전후 복구, 미국의 원조, 경제개발계획, 기업의 성장, 수출산업화와 기술학습 등을 통해 새로운 경제와 국가를 만들어갔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산업화는 식민지 유산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식민지의 경험이 일정한 조건과 유산을 남겼다는 사실과 대한민국이 그것을 활용하고 변형하여 산업화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동시에 보아야 한다. 과거의 유산은 조건일 수 있지만 운명은 아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가장 중요한 가상의 질문으로 들어간다.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하지 않았거나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지 않았다면 한반도에는 어떤 길이 가능했을까? 독립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