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신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신들의 이야기 속에 자기 자신을 숨겨두었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다 보면 수많은 이름과 족보에 먼저 압도된다. 제우스와 헤라, 아테나와 아폴론, 페르세우스와 헤라클레스, 오이디푸스와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누가 누구의 자식인지 기억하는 데 집중하다 보면 정작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이 이야기를 다시 들려준 이유를 놓치기 쉽다.
『신화는 인간을 말한다』는 신들의 이름을 외우는 책이 아니다. 카오스에서 시작해 올림포스의 탄생과 권력의 이동, 인간의 등장, 영웅들의 모험, 테베와 트로이의 비극, 전쟁 이후의 귀환을 지나 마침내 로마의 성벽까지 하나의 긴 이야기로 이어 읽는다. 앞에서 만난 인물은 뒤에서 다시 등장하고, 한 장에서 던진 질문은 뒤에서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
이 책은 41개의 본장과 6편의 「신화의 방」, 모두 47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47개의 이야기에는 각각 하나의 질문과 한 점의 장면 삽화가 놓여 있다. 그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가이아가 크로노스에게 낫을 건네는 순간,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순간, 프리아모스가 아들을 죽인 아킬레우스의 손에 입 맞추는 순간처럼 각 이야기에서 오래 남아야 할 장면을 한 점의 그림으로 붙잡았다.
47개의 이야기, 47개의 질문, 47점의 삽화.
독자는 이야기를 읽고, 장면을 보고, 마지막에는 그 장이 던지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이 정말 따라가는 것은 사건보다 인간의 질문이다.
왜 권력을 얻은 사람은 다음 세대를 두려워하는가.
인간은 왜 주어진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세계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강한 사람은 무엇으로 무너지는가.
부모의 상처는 어디까지 자식의 삶을 따라가는가.
복수는 잃은 것을 되돌려주는가.
사랑과 의무가 충돌하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문명은 인간의 폭력을 없앨 수 있는가.
제우스와 크로노스의 이야기는 권력의 이야기가 되고,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기술과 책임의 문제가 된다. 페르세포네의 귀환에서는 상실 이후 다시 살아가는 법을 생각하게 되고, 헤라클레스에게서는 힘과 인간의 한계를 묻게 된다. 에코와 나르키소스,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를 나란히 놓으면 사랑이란 결국 상대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나와 다른 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는 질문에 도착한다.
트로이 전쟁에 이르면 질문은 더욱 무거워진다. 전쟁을 결정하는 사람과 그 대가를 치르는 사람은 왜 다른가. 모욕당한 사람에게 공동체는 계속 희생을 요구할 수 있는가. 복수로 사랑하는 사람을 되찾을 수 있는가. 늙은 프리아모스가 자기 아들을 죽인 아킬레우스의 손에 입 맞추는 순간, ‘적’은 다시 아버지와 아들, 친구와 누군가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돌아온다.
전쟁 이후 오레스테스의 이야기는 개인의 복수를 공동체의 판단으로 옮긴다. 문명이란 인간의 분노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분노와 행동 사이에 시간을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본문의 흐름에서 잠시 벗어나 하나의 질문에 오래 머무는 여섯 편의 「신화의 방」도 있다. 디오니소스와 펜테우스에게서는 질서와 광기를, 미다스에게서는 욕망과 행복을, 벨레로폰·파에톤·아라크네에게서는 인간이 어디까지 신과 경쟁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에코·나르키소스·피그말리온은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