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의사는, 왜 죽음을 알지 못했을까.
평생 수많은 환자의 마지막을 지켜본 의사 최희준.그는 심장이 멎는 순간을 알고 죽음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한 가지 질문 앞에서 멈추곤 했다.
잘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그리고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우리의 오늘을 어떻게 바꾸는가.
은퇴 후 희준은 아내 윤희와 길을 떠난다. 성경 속 사람들이 살고 죽었던 땅을 따라 걷는 오 년의 여행이다.
아브라함과 모세, 베드로와 나사로, 그리고 예수의 마지막 앞에서 희준은 묻는다. 오래 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은 같은가. 인간은 절망의 끝에서 어디로 가는가. 믿음이 있다면 죽음은 더 이상 두렵지 않은가.
그러나 성경 속 사람들의 마지막도 하나의 얼굴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어떤 이는 두려워했고, 어떤 이는 무너졌으며, 어떤 이는 돌아섰다. 또 어떤 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하고 용서하며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겼다.
처음 희준의 수첩은 죽음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했다. 유적과 무덤을 찾아다니며 답을 적었고, 성경 속 마지막 장면들 앞에서 끊임없이 질문했다.
그런데 여행이 계속될수록 수첩에는 이상하게도 다른 것들이 많아진다.
윤희가 건네준 물 한 모금과 함께 먹은 사과, 오래 듣지 못했던 아이들의 목소리, 길가에서 우연히 본 꽃과 어느 아침 창으로 들어오던 빛. 죽음을 찾아 멀리 떠나왔는데 그의 눈에는 자꾸 살아 있는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 년 뒤, 희준은 집으로 돌아온다.
죽음에 대한 완전한 답을 얻은 것도 아니고 두려움이 모두 사라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돌아와 마주한 것은 자신을 기다리던 아내와 어느새 어른이 된 아이들, 함께 먹는 평범한 저녁과 아직 끝나지 않은 하루였다.
희준의 질문은 조금씩 달라진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남은 오늘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로.
평생 죽음을 의학으로 설명했던 한 의사가 이제 자신의 삶으로 그 질문 앞에 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건네고, 용서를 구하고, 자식의 삶을 놓아주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믿음이 죽음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안은 채 그 너머로 건너가게 하는 것인지 묻는다.
죽음을 배우려고 떠난 한 의사가마침내 사는 법을 배우고 돌아오는 이야기.
죽음은 여전히 두렵다.그러나 그 두려움 때문에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삶이 있다.
손을 내밀면 아직 잡을 수 있는 사람, 함께 먹을 수 있는 한 끼,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 창가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 잎, 그리고 다시 찾아오는 아침.
이 소설은 한 인간의 마지막을 향해 걸어가면서 오히려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에게 아직 오늘이 남아 있다면,그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