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소설

레르몬토프 서사시선

미하일 유리예비치 레르몬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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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30,400 ⓒ
레르몬토프 서사시선
듣기기능TTS지원파일정보EPUB
총 용량5.4 MB이용기기
ISBN9791143027702
책 소개
레르몬토프는 19세기 전반기 러시아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약 30편의 서사시를 통해 자유를 갈망하지만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인간의 고독과 운명을 그려 냈다. 레르몬토프 서사시의 정점으로 평가받는 〈수련 수도사〉와 〈악마〉 외 〈자유의 마지막 아들〉, 〈죽음의 천사〉, 〈고백〉, 〈이즈마일 베이〉, 〈하지 아브레크〉, 〈대귀족 오르샤〉, 〈몽고〉, 〈황제 이반 바실리예비치, 젊은 오프리츠니크와 용감한 상인 칼라시니코프에 대한 노래〉, 〈탐보프 재무관의 부인〉, 〈도망자〉,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를 실어 그의 작품 세계를 확연히 드러냈다.
목차
자유의 마지막 아들
죽음의 천사
고백
이즈마일 베이
하지 아브레크
대귀족 오르샤
몽고
황제 이반 바실리예비치, 젊은 오프리츠니크와 용감한 상인 칼라시니코프에 대한 노래
탐보프 재무관의 부인
도망자
수련 수도사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
악마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작가 소개
  • 작가미하일 유리예비치 레르몬토프
  • 번역홍대화
미하일 유리예비치 레르몬토프는 1814년 10월 3일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마리야 미하일로브나 아르세니예바는 부유하고 명망 높은 가문의 후손이었고, 아버지 유리 레르몬토프는 퇴역 대위로 몰락한 귀족 가문의 후예였다. 레르몬토프의 외할머니 엘리자베타 알렉세예브나 아르세니예바는 외손자를 지극히 사랑했지만, 사위는 무척 싫어했고 이로 인해 가정불화가 있었다. 레르몬토프는 외할머니의 품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그는 응석받이로 자라 고집이 세고 신경질적이었다. 한편으론 몸이 약해 세 번에 걸쳐 캅카스로 요양을 갔다. 유년 시절에 가 본 캅카스는 그의 감수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색적·문학적인 소년이 되어 갔던 것이다. 1828년, 레르몬토프는 모스크바 부속 귀족 기숙학교에 입학, 이 시절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때 쓴 작품들은 주로 푸시킨을 모방한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가장 유명한 서사시 <악마>의 창작에 착수했다. 그는 이 작품에 전 생애를 바치게 된다. 1830년 레르몬토프는 모스크바 대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모스크바 대학 교수들은 학생들의 지적·정신적·정치적 호기심들을 충족시켜 주지 못했고 그로 인해 학생들의 반발이 심했다. 레르몬토프는 이러한 학생들의 움직임에 적극 동조했다. 강의 도중 문제 있는 교수를 쫓아내거나 비판하는 행동에 나섰고, 종국에는 사실상 쫓겨나고 만다. 이어 그는 페테르부르크 대학 편입을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자 근위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사관학교 시절은 고됐지만 그 와중에 생애 최초의 소설인 《바딤》미완성을 썼다. 임관 후 사교계에 드나들기 시작하는데 사교계 상층부는 그를 두고 ‘불손하게도 근본을 알 수 없는 자가 사교계에 머리를 들이밀려고 한다’고 여겼다. 그는 사교계에서 관심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한 여인을 이용해 버리고는 외면하는 행각을 벌였다. 이런 일은 나중에 《리곱스카야 공작부인》에서 소재로 사용된다. 그 후 반골 기질이 발휘되며 황실 및 권력층과 관련된 필화, 유배, 일부 인사들과의 원한 등이 반복됐다. 마침내 1841년, 사관학교 동기 마르티노프와의 반목이 폭발한다. 레르몬토프는 일찍이 마르티노프의 집안과 오해에 휩싸인 적이 있고, 거기에 레르몬토프는 마르티노프를 놀리고 다녔다. 일부 권력층이 마르티노프를 ‘충동질’했고 결국 둘 사이에는 결투가 벌어진다. 그해 7월 15일 결투가 성사됐고, 레르몬토프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마르티노프는 겨우 석 달 동안 투옥됐다가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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