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히 본 온라인 콘텐츠 하나가 이 책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한 화제의 인물의 영문 이름 철자를 재배열하면 불길한 단어 하나가 정확히 만들어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진행자는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오랫동안 준비된 운명의 증거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설명했습니다. 저는 그 영상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논리적으로는 허술해 보이는데, 이상하게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사를 시작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이런 식의 '지목'이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로마 시대의 황제부터 냉전기의 정치인, 정보화 시대의 기업가에 이르기까지, 시대마다 사람들은 누군가 한 명을 향해 "이 사람이 바로 그 인물이다"라고 확신에 찬 손가락을 겨눴습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 확신은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다음 세대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관측이 많습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궁금해졌습니다. 대상은 계속 바뀌는데 이야기의 구조는 왜 이렇게 한결같을까. 애너그램이나 숫자 계산법 같은 '증거'들은 대체 어떤 원리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왜 매 시대마다 그런 이야기에 그토록 쉽게 끌리는 것일까.
이 책은 그 질문들을 따라가 봅니다.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온 '악당 지목'의 사례들을 살펴보고, 그 뒤에 숨은 심리적 메커니즘을 짚어보려 합니다. 특정 인물이 실제로 어떤 존재인지를 단정 짓기 위한 책이 아니라, 우리가 왜 그런 이야기를 만들고 또 믿고 싶어 하는지를 들여다보기 위한 책이라는 점을 먼저 밝혀두고 싶습니다.
어쩌면 이 여정의 끝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 사람'이 아니라 그런 이야기를 필요로 했던 우리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