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은 천재 작가와 요정 같은 그의 아내, 그리고 칼을 든 하우스보이. 이 기묘한 집구석에서 말로가 마주한 것은 사랑인가, 아니면 멀리 돌아가는 자살인가.
영화 “긴이별(The Long Goodbye, 1973)”의 원작 소설
* * *
레이먼드 챈들러의 걸작 『기나긴 이별』은 냉소적이지만 자신만의 도덕적 기준만은 결코 굽히지 않는 사립 탐정 필립 말로가, 우연히 마주친 한 남자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거대한 권력과 진실에 맞서는 하드보일드 누아르다.
이야기는 더 댄서스 클럽 앞, 술에 취해 롤스로이스 뒷좌석에 널브러져 있던 백발의 사내 테리 렌녹스를 말로가 우연히 도와주면서 시작된다. 묘하게 매력적인 이 길 잃은 개 같은 남자와 김렛 잔을 기울이며 우정을 쌓아가던 어느 날 새벽, 테리는 피 묻은 손에 총을 쥔 채 나타나 멕시코 티후아나로 데려다 달라는 무모한 부탁을 던진다. 그리고 그 부탁 하나로, 말로의 평온한 일상은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테리의 아내이자 억만장자 할런 포터의 딸인 실비아 렌녹스가 잔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고, 테리는 멕시코의 한 호텔에서 자백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경찰과 검찰, 그리고 막대한 부와 권력을 쥔 포터 가문은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사건을 서둘러 덮으려 한다. 하지만 말로는 친구가 그런 잔인한 짓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는 직감 하나로, 모두가 침묵을 강요하는 도시에서 홀로 진실을 파고들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