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백성을 낼 때 본래 천인은 없었다."
조선왕조실록 1,893권 472년의 장대한 기록 속에는 왕과 고관대작들의 논쟁 뒤편, 차가운 흙바닥에 엎드려 있던 노비들의 거친 숨소리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다.
1398년 태조의 조정에서 사람에게 400필이라는 공식 가격표를 매기던 날부터, 핏줄을 찢어 발기며 사람을 반으로 나누던 태종의 중분법(中分法), 세종이 베푼 파격적인 130일의 출산휴가와 그 이면에 도사린 계급적 한계, 계유정난의 피바람 속에 공신들의 전리품으로 전락한 사육신의 부녀자들, 법전 《경국대전》으로 완성된 영구적 동족 예속 일천즉천의 덫, 그리고 마침내 1894년 갑오개혁과 동학의 함성 속에 500년 쇠사슬을 끊어내기까지.
본서는 외부의 정복 전쟁이나 노예무역선 하나 없이 오직 국가 관료제와 성리학 법전으로 전 인구의 30~40%에 달하는 동족을 합법적으로 예속·세습시켰던 조선의 제도적 역설을 1차 정사(正史) 사료에 근거하여 치밀하게 파헤친다. 나아가 매질 앞에 무력한 가축이 아니라 법정에 서서 권리를 다투고, 도망과 항쟁으로 신분제의 감옥을 안쪽에서부터 부러뜨렸던 역사의 진짜 주역 노비들의 처절한 생존과 투쟁을 복원해 낸 압도적인 역사 르포르타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