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문둔갑奇門遁甲이라는 네 글자를 처음 마주하면 누구나 비슷한 표정을 짓습니다. 어렵고, 낯설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가늠이 안 된다는 표정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학문은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제왕과 책사들의 손에서만 다루어지며 일부러 어렵게 감추어진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의외로 단순한 질문 하나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 있는 나에게 어떤 기운이 흐르고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사주명리학이 태어난 순간의 시간만을 들여다본다면, 기문둔갑은 거기에 공간이라는 또 하나의 축을 더합니다. 같은 시간이라도 어느 방향, 어느 자리에서 일을 도모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의 길흉화복을 가늠하는 까닭에, 예로부터 이 학문은 병법가의 전략서이자 제왕의 통치술로 쓰였습니다.
이 책을 쓰면서 가장 경계한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이론을 나열하는 데 그쳐 독자가 끝내 자기 손으로 명국 하나 세우지 못한 채 책장을 덮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반대로 산출 공식만 가득해 정작 그 숫자와 문양이 무엇을 말하는지 와닿지 않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사주를 붙들고 갑니다. 음양오행을 설명할 때도, 홍국수를 풀어낼 때도, 연국을 포국할 때도 같은 사람의 같은 사주로 돌아와 그 위에 한 겹씩 기운을 쌓아 올립니다. 마지막 장에 이르면 독자는 자신의 사주를 가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이 따라 할 수 있게 됩니다.
세 권 분량의 초안 원고를 하나로 통합하면서, 이 책의 방향을 새로 잡았습니다. 명리학과 섞여 있던 내용을 걷어내고 기문둔갑 고유의 논리만을 남겼습니다. 홍국洪局으로 사주를 숫자로 환산하는 포국법에서 시작하여, 연국煙局으로 천간의 기운을 공간에 새기는 과정, 팔문·구성·직부팔장이 명국 위에 자리를 잡는 원리, 합·충·살이라는 상호작용의 법칙, 그리고 심성·직업·건강·궁합·사업을 실전에서 읽어내는 해단법까지 — 기문둔갑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한 권에 담았습니다.
특히 연국 포국법을 별도의 장으로 크게 늘렸습니다. 한국의 기문이 홍국수를 중심으로 발전해 온 까닭에 연국은 상대적으로 얕게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연국은 홍국과 더불어 한 사람의 명국을 입체적으로 완성하는 또 하나의 축이며, 이를 건너뛰고는 기문둔갑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육의삼기가 무엇을 뜻하는지에서 시작하여 지반과 천반이 자리를 잡는 과정, 그리고 복음국이라는 특수한 형국이 만들어지는 이치까지 한 걸음씩 짚어 나갔습니다.
동양의 술수학은 흔히 미신으로 오해받습니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절기를 셈하고 시간의 오차를 보정하는 정교한 수리 체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초신접기와 윤국이라는 개념은 천문의 실제 흐름과 인간이 만든 역법 사이의 틈을 메우려는 옛사람들의 치밀함을 보여줍니다. 이 책이 기문둔갑을 신비로운 비술이 아니라, 차근차근 따라갈 수 있는 하나의 체계로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운명은 정해진 결말이 아니라 읽어내고 대비하는 자의 몫이라는 말을 믿습니다. 이 책이 독자 여러분께 자신의 시간과 자리를 스스로 가늠하는 눈을 틔워 주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