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사회 시간, 교실 벽에 걸린 커다란 세계지도 앞에서 선생님은 막대기로 땅덩어리를 하나씩 짚어가며 이름을 불러주었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우리는 그것을 외웠고, 시험을 보았고, 그 뒤로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대륙이란 원래 그렇게 생긴 것이고, 그렇게 나뉘어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지도를 다시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는 바다가 없다. 두 대륙은 하나의 거대한 땅으로 이어져 있는데, 왜 둘로 나뉘어 있을까. 러시아는 국토 대부분이 아시아 쪽에 펼쳐져 있는데 왜 우리는 러시아를 유럽 국가로 여기는 경우가 많을까. 이스라엘과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분명 아시아 대륙 위에 있는데 왜 따로 '중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릴까. 그리고 그 '중동'은 도대체 어디를 기준으로 한 '중간쯤의 동쪽'일까.
이 질문을 처음 던진 사람이 우리가 처음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서양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도 비슷한 의문을 품었다. 그는 하나로 이어진 땅에 왜 세 개의 이름이 붙었는지, 그 이름들이 왜 하필 여인의 이름에서 왔는지 알 수 없다고 기록했다. 대륙을 나누는 일은 시작부터 자연의 사실이라기보다 사람의 약속에 가까웠던 셈이다.
약속이라면, 누군가 그 약속을 정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약속을 정하는 자리에는 언제나 힘이 있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어떤 땅에 이름을 붙이는 일, 어느 강과 산맥을 경계로 삼을지 정하는 일, 지도의 한가운데에 어느 나라를 놓을지 결정하는 일은 결코 중립적인 작업이 아니었다는 해석이 많다. 지도 제작자의 책상 위에서 탄생한 이름이 수억 명이 사는 땅 전체를 덮기도 했고, 한 번도 그 땅을 밟아보지 않은 외교관들이 자를 대고 그은 선이 오늘날까지 국경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이 책은 그 선들이 어떻게 그어졌는지를 추적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과거의 이야기에서 멈추지는 않으려 한다. 흥미롭게도 지금 이 순간, 세계 위에는 전혀 다른 종류의 선이 새로 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선을 긋는 손은 제국과 국가의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국경을 넘나드는 위성 인터넷이 전쟁터의 통신을 좌우하고, 한 기업의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가 여러 나라의 안보 판단에 쓰이며, 특정 국가의 통화에 연동된 디지털 화폐가 국경과 상관없이 스마트폰 속을 오간다. 플랫폼 기업이 정한 약관이 어떤 나라의 법보다 더 많은 사람의 일상을 규율한다는 관측도 있다. 대륙과 국경이라는 오래된 선이 흐려지는 자리에 코드와 알고리즘과 코인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선이 그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극명하게 갈린다. 일론 머스크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부분의 노동을 대신하게 되면 모든 사람이 풍요로운 소득을 누리는 '보편적 고소득'의 시대가 올 수 있다고 여러 차례 말해왔다. 반면 거대 플랫폼이 중세의 영주처럼 군림하고 사용자는 그 땅을 빌려 쓰는 농노처럼 살게 될 것이라는 '디지털 봉건주의'의 경고도 만만치 않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공장을 떠나 가정으로 들어오고, 운전석이 없는 택시가 도시를 달리기 시작한 지금, 이 두 전망은 더 이상 공상과학 소설 속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이 책은 어느 한쪽의 결론을 독자에게 건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