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해를 함께 살아온 부부의 이야기를 ‘승부’라는 조금 낯선 틀로 들여다본 시집입니다.
반찬통 뚜껑 하나, 리모컨 한 대, 침대 반쪽을 두고 벌어지는 사소한 다툼은 처음에는 웃음처럼 시작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거실로 밀려난 담요가 되고, 각자의 이불을 따로 덮는 침묵이 되고, 마침내 병실의 약통과 휠체어 앞에 놓인 시간이 됩니다.
60편의 시는 저마다 생활 속 사물 하나를 붙들고 있지만, 앞의 사물은 뒤의 사물을 조용히 불러냅니다. 처음의 ‘반찬통’은 훗날 ‘약통’으로 돌아오고, 몰래 훔쳐 가던 이불은 시간이 흐른 뒤 갚으러 온 이불이 되어 다시 등장합니다.
두 사람은 마흔 해 동안 같은 싸움을 하면서도 서로 다른 승부 규칙을 믿고 살아왔습니다. 한 사람은 “먼저 나가는 사람이 이긴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은 “먼저 돌아가는 사람이 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기고 지는 일을 따지며 살아온 것 같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승부보다 오래 남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드러납니다.
이 시집이 처음부터 끝까지 품고 있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그렇게 오래 이기고 지는 일을 따졌는데, 정말 누가 이겼을까.
마지막 시 〈이긴 사람 없이〉는 그 질문에 승자도 패자도 적어 넣지 않습니다. 대신 오랜 시간 서로의 곁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두 사람 사이에 손 하나를 내밉니다.
《이긴 사람 없이》는 부부싸움에 관한 시집이면서, 결국 함께 늙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활의 사물과 장면으로 기록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