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가는 거의 모든 것의 아름다운 풍경
새것이라고 다 좋은가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이 있다. 지금은 뽕나무밭이 변하여 잠실단지가 되고 10년이면 강산이 10번은 변하는 세상이다. 생명이 있는 것은 이런 변화 속에서 살고 또 죽는다. 과연 무엇이 변하였는가.
우리의 생각과 생활과 가치가 나아졌을 때 그 변화는 역사에 유익한 것이다. 좋은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에는 역사에 오점을 남길 수도 있다. 분명 과학기술은 인간의 생활을 여러 측면에서 편리하게 해 주었다. 힘들고 어려운 것들을 기계와 도구들이 대신하고, 앉아서도 세계를 내다볼 수 있게 되었으며, 양적으로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자. 과연 인간이 편리하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 편리함 뒤에는 어떤 문제점들이 숨어 있는지를.
우리의 조상들은 몸이 편리한 것만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고된 시집살이로 파김치가 된 며느리에게 저녁 지을 쌀 한 되를 내주며 시어머니는 뉘 한 주먹을 섞어 주었다. 며느리는 고단한 몸으로 일부러 섞은 그 뉘를 하나하나 골라내었다. 비인간적이고 비생산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말하지 말자. 그땐 일이란 놈이 끝을 몰랐다. 늘 다른 고된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게 과거 우리 어머니들의 삶이었다. 뉘를 고르는 일은 티안나게 챙겨주는 일종의 쉬는 시간이었다. 여기에 몇 천 년 살아온 조상들의 슬기가 숨어 있다.
변하는 것들에 대하여
인생의 행복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삶의 가치란 무엇인가 하는 고민들이 문득 떠오를 때 우리는 너무 빨리 달려오지 않았나 하는, 그래서 얼떨결에 잊어버린 것들에 대한 것들과 쓸쓸하게 마주치게 된다. 이 책의 사라져가는 풍경들은 오래지 않은 우리 부모님 세대나, 자신의 이야기이다. 그땐 그랬었지, 하며 추억에 잠길 수도 있다. 좀더 바란다면 진정한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무릇 문명의 변화에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
첫째, 가치가 검증되야 된다. 합리성, 효율성, 생산성, 편리성이란 허울 좋은 단어 뒤에 숨어 있는 나쁜 요소는 없는지를 많은 시간과 공간을 두고 검증해야 한다. 둘째, 그 변화의 주체가 인간 위주의 변화이어야 한다. 인간이란 시간적으로는 과거의 조상과 미래의 후손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고, 공간적이란 전 인류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 자기 민족만을 위하는 배타적인 가치가 아니다.
우리는 변해가는 것에 대해 너무 무심했다. 후진국이란 딱지가 싫어서 무조건 외국의 변화를 눈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