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동안 얻어먹을 힘조차 없는 이들을 위해 꽃동네를 설립한 오웅진 신부!
43년 동안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를 지킨 마가레트 수녀와 마리안 수녀!
49년 동안 수많은 고아와 노인들의 보호자였던 루이 델랑드 신부!
가장 낮은 곳에서 위대한 종교적 사랑을 실천한 분들입니다!!!
이 책 [아름다운 사람 루이델랑드]는 한국에서 선교와 봉사로 삶을 마친 프랑스 출신 가톨릭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루이 델랑드 신부는 사제로서의 편안한 삶을 버리고 선교사의 무덤이라 불렸던 식민지 조선에 선교사로 왔다. 이후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주는 동시에 불우한 이웃을 돌보고, 조선의 독립을 위해 계몽활동에 앞장섰다. 이는 조선이 바로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독립을 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델랑드 신부는 일제와 타협하지 않고, 조선인 스스로 문화민족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도록 했으며, 사목회를 설립, 연극 공연, 수도자 양성 등의 활동을 통해 조선인 스스로 교회를 운영하도록 하였다. 이는 자유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동시에 자율과 책임이라는 민주적 질서를 스스로 깨닫게 한 것이다. 노동자의 집, 야간 학교, 무료진료소, 무료급식소, 보육원, 양로원 등을 운영하는 등 평생 사회복지사업에도 힘썼다.
루이 델랑드 신부(한국명; 남대영)는 가톨릭 신부이기에 앞서
지난 세기 굴욕과 고통의 시기를 한국인과 함께 했던 현대사의 중요한 인물이다.
한국과 한국인을 위해 평생을 바친 그의 이야기는 앞만 보고 달려 온 우리에게
잊고 살았던 한국근현대사 뒤안의 소중한 역사를 성찰하게 한다.
루이 델랑드(한국 이름: 남대영) 신부ㆍ1895년 6월 13일 프랑스 노르망디 연안에 있는 망쉬 빠리니Parigny에서 목수인 아버지 레옹 앙리 델랑드와 유아원을 운영하던 어머니 빅토린느 프랑스와즈 르꾸띠리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전통적인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루이 델랑드 신부는 특히 신앙이 깊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베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꾸땅스 대신학교에 입학하여 사제 수업을 받던 1915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 살상과 만행이 자행되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이 왜 필요한지 깨달았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세계 각지에서 전교활동을 벌이던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하여 1922년 12월 23일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사제서품을 받았다.
1923년 6월 5일 조선에 첫 발을 내 딘 루이 델랑드 신부는 대구대교구와 부산교구의 본당에서 사목활동을 하였다.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