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정봉주
저자 정봉주는 노원구 공릉동을 지역기반으로 태어났다. 청소년기는 축구와 쿵푸에 빠져 매일매일 행복하게 노셨다. 결국, 재수학원에 들어가지만 명랑 생활을 끝내지 못했다. 어느 날 자신이 멘토로 삼았던 친구의 진심 어린 충고를 듣고 매일 3시간씩만 자면서 공부에 전념하기를 2년. 마침내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에 입학했다. 대학 입학 후, 학생운동에 매진했다. 막내아들이 걱정된 경찰공무원 아버지는 억지로 ROTC에 입단시켰다. 나름 1년 반 동안 착실히 장교교육을 받았지만, 4학년 때 학내 시위에 연루돼 도피 생활을 하다가, 그해 9월 28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구속되어 1년 6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ROTC 출신 최초로 학생운동에 연루되어 감옥을 오랫동안 지켰다. 아버지는 거의 돌아버리실 지경이었다는 후문. 이렇게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시국사범으로 수감돼 병역을 만류당하고 대학 졸업 후, 군사독재 시절 전설적인 진보 성향의 정론지 월간 「말」지 기자로 활동했다.1990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U. C. Riverside)에서 영어교육전문학위(TESOL)를 취득했지만 귀국 직후 운동권 선배들의 꼬임에 빠져 서른두 살의 젊은 나이에 노원구 공릉동 지역에서 서울시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모아두었던 피 같은 사업 자금과 여기저기서 빌린 돈을 합해 2억 원이 넘는 돈을 쓰고 200표 조금 안 되는 표차로 아쉽게 낙선했다. 크게 절망하여 돈을 벌어 정치하겠다는 각오로 사업에 매진했다. 결국 전국에 80개의 프랜차이즈를 둔 (주)한국외국어대학교 외대어학원 대표이사로 성공했다. 이렇게 성공한 사업가로 관성에 따라 살다가 운명과도 같이 자신의 본성과 조우했다. 그 후 2002년 극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는 것을 보면서 세상에 커다란 정치 개혁의 물결이 오고 있음을 직감하고 출마를 결심했다.국회의원 출마를 위한 제반 교육을 일주일 만에 속성으로 마스터한 후 드디어 2004년 4월 15일, 노원구 공릉동 월계동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제17대 국회의원 정봉주가 탄생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바람을 타고 당선됐다 하여 ‘탄돌이’라 불렸다. 당선 후, 대한민국에서의 삶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교육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믿음 위에 교육위원회 소속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사학법 개정에 온몸을 던지고, 비리 사학, 교육 권력과 맞서 싸웠다. 이렇게 현역으로 바쁜 가운데에도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뼛속 깊이 교육의 DNA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랬던 그가 임기 말에 다시 몸을 던진 사건이 있었으니(실제로 몸을 던졌다),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명박의 BBK 주가조작 및 횡령과 관련된 의혹 제기가 그것이다. 국가와 사회가 투명하고 건강하려면 지도자가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어야 한다는 상식 아래 철저한 자료와 증거를 가지고 의혹을 제기했고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당시 당선이 유력했던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 검증을 위해 최선을 다한 그는 국민들로부터 ‘BBK 스나이퍼(저격수)’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동시에, 대한민국 사법부로부터는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2011년 11월 현재) 언제나 우리에게 ‘쫄지 말라’며 입바른 말과 호탕한 웃음으로 유쾌ㆍ통쾌ㆍ상쾌함을 선사하지만, 실제로는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에 떨기도 하는 약한 ‘인간’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