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심 고리키 (Максим Горький, 1868 - 1936)
본명: 알렉세이 페쉬코프.
1868년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출생. 6살 때부터 할아버지에게서 글을 배우고 1877년에 니즈니노브고르도 쿠나빈스코예 학교에 입학. 1879년, 11살 때부터 생계곤란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세상속으로≫ 들어감.
1879년부터 1884년까지 어린 고리키는 다양한 직업을 전전(제화점 점원, 화공도제, 기선주방일 등)
1884년에 16살의 고리키는 대학진학의 희망을 품고 카잔으로 떠남. 1888년부터 1892년까지 러시아 남부 전역과 남 베사라비아, 크림과 카프카즈를 포함하는 러시아 순례를 함. 그 동안 시골 품팔이, 어부, 기선의 접시닦이, 철도원 등으로 일을 함.
1892년 ≪카프카즈≫ 신문에 막심 고리키라는 필명으로 첫 단편소설 ≪마카르 추드라≫ 발표. 고리키는 코롤렌코를 자신의 '문학적 대부'로 여김. 1895년부터 1896년까지 ≪사마라신문≫의 주필로 일했고 바로 그 신문에 '이에구질 흘라미드'라는 필명으로 약 200편의 칼럼, 르포, 평론, 그리고 ≪이제르길 노파≫를 포함한 다수의 단편소설을 발표. 당시 ≪사마라 신문≫의 교정원 에카테리나 파블로브나 볼쥐나를 만나 1896년에 결혼.
1896년부터 1897년까지 고리키는 ≪니줴고로트스키 리스토크≫ 신문사에서 일을 하다 갑작스러운 건강악화로 1897년 아내와 남부지방으로 이주. 1898년 초 고리키는 다시 니즈니노브고로드에 돌아와 ≪르포와 단편소설≫ 1,2권을 집필하여 출간.
≪르포와 단편소설≫은 기대이상의 성공을 거둠. 비평가들은 한 목소리로 ≪르포와 단편소설≫의 출현을 러시아의 사회문화적 사건, 작가의 자기 정체성 확립의 순간으로 평가. 다른 한편, 비평가들은 고리키의 작품에서 60-70년대 리얼리즘에 전통적인 '이타적' 테마를 언급하기도 함.
1899년부터 1906년까지 고리키는 러시아 사회문화의 주요 인사가 됨. 더불어 체호프, 레핀, 샬라핀, 메레쥐코프스키, 안넨스키 등 당시 문화계 인사들과 두터운 교분을 나눔. 작가의 주변에는 이외에도 안드레예프, 부닌, 쿠프린, 베레사예프 등 '네오리얼리즘' 작가 군이 늘 모여듬. 1898년 가을부터 고리키는 잡지 ≪삶≫의 이념적 지도자가 됨. 1900년 9월부터 출판공동체 ≪즈나니에≫ 운영. 1904년부터 1913년 폐간 때까지 새로운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문학 선집을 40권 출판. 1902년부터 1905년까지 고리키는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고정 작가로서 활동. 희곡 ≪밑바닥에서≫의 초연은 체호프의 ≪갈매기≫와 함께 러시아연극사의 한 장을 장식. 1905년 정치적 이유로 러시아를 떠난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