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소설

어머니

막심 고키리
써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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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7,200 ⓒ
어머니
듣기기능TTS지원파일정보EPUB
총 용량1.0 MB이용기기
ISBN9788991958241
책 소개
20세기 최고의 작품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 탄생 100주년 기념 
『어머니』 러시아판 완역 20주년 기념 새로운 번역 새로운 해석 
써네스트 출판사의 총서 『새롭게 읽는 러시아 고전』 첫 번째 책 

『어머니』 탄생 100주년 기념 새로운 번역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는 1985년 한 출판사에서 일본어를 번역함으로써 전격적으로 대한민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에 이 책은 젊은 대학생들에게 많은 관심을 일으켰고 그런 대학생들의 관심에 힘입어 1989년에 이제는 메이저가 된 출판사에서 러시아어 판 완역본이 출판되었고, 그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당시에 한 달에 몇 천 권씩 팔렸다고 하니 지금의 시장 상황과 비교를 하더라도 최고의 베스트셀러였음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1985년의 일어판 번역본도 1989년의 러시아어판 번역본도 몇몇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러시아 전문 출판사임을 자임하는 도서출판 써네스트에서는 그 동안 번역되어 있는 러시아 문학을 다시 한번 현대어로 번역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 총서 시리즈를 『새롭게 읽는 러시아 고전』으로 명칭 하였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책을 고르던 와중에 역자와의 인연으로 그 첫 번째 책으로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를 출판하게 되었다. 
마침 『어머니』가 세상에 나온 지 100년이 지났으며(1907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한국에 러시아어 완역판이 소개 된지도 20년이 지난 상태여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생각을 하였다. 게다가 요즘과 같은 시국에 우리에게 『어머니』같은 책이 다시 필요한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물론 그 반대로 80년대의 서슬 퍼런 『금서』처럼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도 종교적 복음서도 아닌 새로운 해석의 시도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가 세상의 빛을 본 지 한 세기가 지났다. 그간 이 소설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기초한 당에 관한 소설’이라는 교조적 평가와 ‘고리키 식의 복음서’라는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상반된 평가를 받아왔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90년대 첫 번째 이유로 대학가에서 새내기 필독서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당에 관한 소설에 관심을 보일 사람은 없고 더구나 뜬금없는 복음서라는 말에 귀를 기울일 사람 또한 찾기 어렵다. 비록 출간 이후 상당한 시간이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틀 안에 작품을 가두고자 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라고 해도, 또 기독교적 가치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신성모독에 대한 빌미를 제공했다손 치더라도, 두 입

목차
1부 
2부 

옮긴이의 글

작가 소개
  • 작가막심 고키리
  • 번역최은미
막심 고리키 (Максим Горький, 1868 - 1936) 

본명: 알렉세이 페쉬코프. 
1868년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출생. 6살 때부터 할아버지에게서 글을 배우고 1877년에 니즈니노브고르도 쿠나빈스코예 학교에 입학. 1879년, 11살 때부터 생계곤란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세상속으로≫ 들어감. 
1879년부터 1884년까지 어린 고리키는 다양한 직업을 전전(제화점 점원, 화공도제, 기선주방일 등) 
1884년에 16살의 고리키는 대학진학의 희망을 품고 카잔으로 떠남. 1888년부터 1892년까지 러시아 남부 전역과 남 베사라비아, 크림과 카프카즈를 포함하는 러시아 순례를 함. 그 동안 시골 품팔이, 어부, 기선의 접시닦이, 철도원 등으로 일을 함. 
1892년 ≪카프카즈≫ 신문에 막심 고리키라는 필명으로 첫 단편소설 ≪마카르 추드라≫ 발표. 고리키는 코롤렌코를 자신의 '문학적 대부'로 여김. 1895년부터 1896년까지 ≪사마라신문≫의 주필로 일했고 바로 그 신문에 '이에구질 흘라미드'라는 필명으로 약 200편의 칼럼, 르포, 평론, 그리고 ≪이제르길 노파≫를 포함한 다수의 단편소설을 발표. 당시 ≪사마라 신문≫의 교정원 에카테리나 파블로브나 볼쥐나를 만나 1896년에 결혼. 
1896년부터 1897년까지 고리키는 ≪니줴고로트스키 리스토크≫ 신문사에서 일을 하다 갑작스러운 건강악화로 1897년 아내와 남부지방으로 이주. 1898년 초 고리키는 다시 니즈니노브고로드에 돌아와 ≪르포와 단편소설≫ 1,2권을 집필하여 출간. 
≪르포와 단편소설≫은 기대이상의 성공을 거둠. 비평가들은 한 목소리로 ≪르포와 단편소설≫의 출현을 러시아의 사회문화적 사건, 작가의 자기 정체성 확립의 순간으로 평가. 다른 한편, 비평가들은 고리키의 작품에서 60-70년대 리얼리즘에 전통적인 '이타적' 테마를 언급하기도 함. 
1899년부터 1906년까지 고리키는 러시아 사회문화의 주요 인사가 됨. 더불어 체호프, 레핀, 샬라핀, 메레쥐코프스키, 안넨스키 등 당시 문화계 인사들과 두터운 교분을 나눔. 작가의 주변에는 이외에도 안드레예프, 부닌, 쿠프린, 베레사예프 등 '네오리얼리즘' 작가 군이 늘 모여듬. 1898년 가을부터 고리키는 잡지 ≪삶≫의 이념적 지도자가 됨. 1900년 9월부터 출판공동체 ≪즈나니에≫ 운영. 1904년부터 1913년 폐간 때까지 새로운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문학 선집을 40권 출판. 1902년부터 1905년까지 고리키는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고정 작가로서 활동. 희곡 ≪밑바닥에서≫의 초연은 체호프의 ≪갈매기≫와 함께 러시아연극사의 한 장을 장식. 1905년 정치적 이유로 러시아를 떠난 고

출판사
써네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