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이 드문드문한 고기를 얹은 시커먼 맨모밀국수, 흰밥과 가재미, 진장에 꼿꼿이 지진 달재 생선……. 백석의 시는 온통 음식 천지다. 지금까지 알려진 백석 시 100여 편 가운데 음식이 나오는 시는 60여 편에 이르며, 등장하는 음식의 가짓수는 110여 종에 달한다. 배척한, 비릿한, 구릿한, 달큼한, 시금털털한 등 맛을 표현하는 미각 형용사도 23회나 나온다.
‘음식’이라는 단일 주제를 통해 백석의 시를 음미하는『백석의 맛』은 백석의 음식에 대한 인식의 심층적 의미를 밝혀내고, 영양학적 관점과 욕망의 기호 속에 갇힌 근대의 음식 인식과 그로 인한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단순한 시 해석의 차원을 넘어 음식 문화의 다양한 측면과 미각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고자 한 이 책은 현대의 음식 문화가 잃어버린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한다.
백석으로 인해 비로소 음식은 우리 시에서 중요한 주제가 되었으며, 맛을 즐기는 단순한 경험에 사유의 깊이를 더할 가능성을 얻게 되었다.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살아가야 하는 시인의 운명, 그리고 언제나 다정한 동무가 되어준 음식들, 투박하지만 담백한 시어 속에 끈질기게 살아남은 그 맛들은 뜨끈한 그리움과 즐거움을 함께 선사할 것이다